brunch

매거진 귀촌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랑꼴리한 말미잘 May 03. 2024

5. 충청도의 힘

괴산 탐색

충북 괴산. 옆지기는 그 이름이 싫다고 했다.

괴기스럽잖어.

그런가?


같은 충청도지만 충남과 충북은 사뭇 다르다.

아버지는 충북, 어머니는 충남이 고향이다. 나는 충북과 충남의 차이를 친가와 외가의 친척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꼈다.

상대방이 불편한 말을 쉽게 하여 다소 불친절한 인상을 주는 친가 사람들.  내 나이 40대 후반에서 50대를 넘어갈 즈음, 명절에 오신 작은 아버지가 내 나이를 묻더니 하시는 말이


뭐? 그렇게 많아? 재취나 가야겠구먼.

나이 먹은 미혼의 조카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런 거였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동네에서도 호랑이할머니로 유명했던 친할머니는 대부분 다른 사람의 말에 일단 반대부터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 할머니 방문을 열고, "할머니, 진지 잡수세요" 하자

"식전부터 뭔 밥이냐!!!" 하고 불호령을 내리시는 거였다.

네? 식전이니까 식사하시라는 건데...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혼이 났다.  


외가 사람들은  능청스럽고 말을 잘하며, 모여 노는 것을 좋아했다. 외가 식구들은 대부분 노래를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실 때면 이모들, 외삼촌들이 모두 함께 와서 떠들썩하게 놀았다.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며 연극을 하던 시절,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하여  보니 다들 모여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오셨어요?

어, 왔냐? (화투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모든 이모와 외삼촌들이 인사를 받는다)

밥은 먹고?

(대답할 새도 없이) 시간이 몇 신데 이제까지 굶었겄어?

네가 올해 몇이냐?

(대답할 새도 없이) 마흔 넘었지?

벌써 넘었지. 애가 어려 보여서 그렇지.

그렇구먼. 나는 아직도 대학생 같아.

저렇게 이쁜데 왜 데꾸가는 사람이 없을까?

사귀는 사람 읎어? 아직도 연극하고 댕기냐?

(대답할 새도 없이) 냅둬. 알아서 허겄지. 쟈랑 말 섞어봤자 입만 아퍼

그랴. 쟤 못 당햐.


나는 한 마디도 안했다. 아니 못했다.


충청도 사람들이 의뭉스럽다고 하지만, 그만큼 유머의 질이 남다르. 그래서 그런지 유명한 개그맨들은 대부분 충청도 출신이라는 말도 있다. 가끔은 선을 넘을때가 있어서 그렇지 충청도식 유머는 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귀촌할 지역을 정함에 있어, 경기도권을 제외하고 서울에서 2시간 이상 걸리는 경상, 전라권을 제외하자 그 대상은 충청도권으로 좁혀졌다. 충남의 공주와 예산이 그 1차 후보지였으나 마땅한 인연이 나타나지 않자, 우리의 관심은 충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중 괴산은  2020년 돌아가신 아버지를 괴산에 있는 호국원에 모셨고, 같은 해 세상을 떠난 막냇동생의 제사를 모시는 절이 있어서 여러번 가본 적이 있었고, 오래된 친구가 살고 있기도 했다.

본격적인 첫 답사지였던 '예산'에서 기 센 귀촌 선배님들에게 기를 빨리고, 생맥주와 골이가 없는 칙칙한 호프집에서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다 보니 뭔가 반전이 필요했다.

 

아직도 괴산이 별루야?

아니. 알아보니 괴산이 귀촌인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지역 중의 하나더라고. 귀촌 인구도 많고.

그럼, 친구한테 전화해 볼까?

그래.


30여 년 전 연극을 하던 시절, 같이 연극하던 동갑내기 친구 중에 박 모가 있었다. 그는 잘생긴 외모와 활달한 성격, 뛰어난 재능으로 요즘 말하면 인싸였다. 나는 수줍은 성격이기도 했고 그와는 활동 시기가 겹치지 않아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동갑내기들 모임을 통해서 계속 연락이 되는 사이였다.

그는 일찍이 새로운 양식과 실험적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좋은 작품의 주역이 되었으며,  뜻밖에 목수가 되었으며(어린 시절부터 꿈이라던가), 이른 나이에 귀촌을 했다. 첫 귀촌지는 양평이었고, 괴산에 와서는 자기 집을 손수 지었다. 지금 사는 집은 두 번째 집이고 역시 자신이 지었다.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예쁜 여자와 결혼을 했고, 부부끼리 합이 잘 맞아 꽁냥꽁냥 살아간다.

이 친구가 가족과 함께 매년 겨울 동남아로 여행 다니는 이야기를 SNS에서 보게 되었고, 우연히 나와 여행 시기가 맞는 어느 해, 머나먼 타국 어느 술집에서  만나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었다.

그래, 내친김에 전화해 보자.


여보세요? 여전히 약간은 나른한 친구의 목소리.

잘 지내?

그렇지 뭐.

나 귀촌 고민하고 있어.

그래?

괴산 어때? 좋아?

살고 있는 사람한테 그렇게 물어보면 뭐라 하겠냐?

그런가?

관점에 따라 다르지. 투자 가치를 생각한다거나 뭐 근사한 곳을 생각한다면 괴산은 안 맞지. 큰 산업단지가 있다거나 이름난 명소가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진짜 한적한 시골살이를 생각한다면 참 좋지. 공기도 좋고 산도 좋고. 자연과 마을이 어우러진. 난 그래서 좋아.

그렇구나. 소개해줄 만한 곳이 있을까?

그럼. 내가 지은 집도 있고.

알았어. 갈게.


그래서 두 번째 답사지역은 괴산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 예산(禮山)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