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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Sep 14. 2020

배우가 되어야만 했다

"쟤한테는 그냥 종이랑 연필 하나 주세요. 혼자 잘 놀아요"

어린 시절 엄마를 쫓아간 친척댁, 같이 놀 어린아이도 없고 장난감도 없어 어떡하냐고 친척 어른이 묻자 엄마가 한 말이다. 종이와 연필을 배급받은 나는 낯선 방에 들어가 배를 깔고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방문도 닫아주세요"

그냥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만화를 그리면서, 각 인물이 되어 대사도 한다. 남자 역도 하고 여자 역도 하고 아이 역도 한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러니까 혼자 잘 논다.

거울을 보며 연기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흰 도화지보다 더 재미있다. 다양한 표정 연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보자기 한 장은 훌륭한 의상과 소품이 된다. 집 밖으로 나가도 좋다. 무대와 세트가 널려있다. 꽃과 나뭇잎을 문구용 칼로 잘라 요리를 만들고, 빨간 벽돌을 갈 고춧가루도 뿌린다.  아주 어린아이 시절에 한 살 아래 사촌동생은 나와 '여보, 당신' 하는 소꿉놀이가 재미있어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돐무렵. 좋아하는 인형을 안고

인형놀이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인형은 나의 동반자였다. 안고 있다가 눕혀놓으면 눈이 감기는 파란 눈의 금발 인형부터 다양한 인형들을 중고등학생 때까지 갖고 놀았다. 용돈이 생기면 인형들 새 옷 사 입히는 게 즐거움이었다. 종이인형도 좋아했고, 동물 모양 저금통까지두 내 아이들이었다.

동생들, 나중에는 조카들과 함께 각종 인형으로 노는 상황극 놀이의 대장은 언제나 나였다. 이야기 만드는 게 참으로 재미있었다.

어릴 때부터 이러했으니, 당연히 나의 꿈은 연극배우였다. 아버지의 옛날 책꾸러미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집을 찾아 읽고, 뜻도 모르는 대사를 외워대곤 했다. 언젠가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웃고 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니, 아주 큰 문제가. 에게는 숫기가 너무나 없었던 것이다. 즉, 혼자서는 별 짓을 다할 수 있는데, 남들 앞에서는 말 한마디 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 가면 하루 종일 단 한마디도 안 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 있을 정도로 내성적이었다. 어린 시절 통지표에는 '발표력 부족', '얌전하고 조용함' 단골 평가였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잘 말하지 못했던 어린아이는 그래서 더 혼자 놀았다.

집안에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가정환경 탓이기도 했지만, '연극영화과'같은 학과는 특별한 사람만이 가는 곳이라고 알았던 나는 간절히 원하는 배우의 꿈을 대학생이 된 후로 미루어놓았다. 대학교에만 들어가면, 연극반에 들어가서 연극을 하리라 다짐했다.


연극반도 없는 중고등학교의 암흑기를 거쳐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 신입생 환영회에, 각종 동아리에서의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나의 관심은 연극반 밖에 없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생회관 4층 구석에 있는 연극반에 홀로 찾아갔다. 웬일인지 연극반은 별로 홍보가 없었고 신입생 모집에 관심도 없어 보였기 때문에 직접 찾아갔던 것이다.

대부분의 수업이 끝난 늦은 오후,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연극반에는 3학년 선배 한 명 만이 외로이 앉아 있었다.

"응? 신입생?" 느릿느릿 일어나는 그 선배는 몹시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여대였기 때문에 모든 선배는 여자임)

"글쎄... 신입생 모집하나?". 80년대 인기 있던 가수 키메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거의 그에 근접할 정도의 짙은  화장 사자머리에 나는 겁을 집어먹고 돌아 나왔다.

이렇게 배우의 꿈이 시작도 못하고 좌절되는 건가... 절망스러웠다. 용기를 내어 다시 찾아가 가입원서를 썼다. 하고 싶은 공연란에 당당히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다.


연극반이 3월 말에 공연할 작품은 최인훈 선생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였다. 아기장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7~80년대 시대상을 반영한 문제작이었다.

수십년만에 꺼내본 프로그램북 연출의 글에 "나의 시대에는 모든 길이 늪으로 가게 되어있었다" 라는 브레히트의 시구가 쓰여있다. 척박한 시대를 살아낸 당시 댸학생들의 고민이 절절하다. 인훈 선생을 직접 찾아가 공연 허락을 받으며 작품을 준비한 진지함도 느껴졌다.


그렇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 작품이 몹시 지루하고 난해했다. 연극이라 하면 셰익스피어의 서구 연극만을 생각해왔던 나에게 한국의 창작극은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 게다가 최인훈 선생의 상징으로 가득 찬 시적 대사들은 스무 살 남짓의 대학생들이 소화해내기엔 사실 무리였을 것이다

당시 공연 프로그램북 표지

어쨌든 모든 준비가 다 끝난 이번 공연에서  신입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언가 하고 싶었던 나에게 주어진 일은 관객 출입문 지키는 역할이었다. 암전이 많은 작품인데, 관객들이 자주 드나드니까 문 여닫는 것에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니 꼭 필요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매일같이 찾아오는 의욕 넘치는 신입생에게 뭐라도 시켜야 했 것 같기도 하다

연극을 하고 싶은데, 배우가 되고 싶은데.... 나 그 일이 마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문을 꼭 잡고 공연이 진행되는 두 시간 내내 꼼짝하지 않 서있었다. 


그런데  출연도 하지않은 작품임에도 프로그램북까지 간직한 그 작품이 내가 참여한 대학 연극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배우의 운명은 다른 곳에서 손짓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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