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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Sep 07. 2020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관객'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오늘 오후 4시부터 농협 앞마당에서 마당극 공연이 있습니다. 마당극은 본래 배우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인 만큼 어서, 어서 오셔서 함께 신명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어머님 좋아하시는 민요, 풍물, 아기들이 좋아하는 인형극도 합니다. 모두 모두 얼렁 나오세요”

이것이 무슨 소리냐? 내가 재래시장 순회공연에서 마이크를 잡고 외쳐대는 소리다. 시장판에서 음악 틀어놓고 공연을 홍보하다 보면 지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약장수여?” “뭐 팔러 왔어?” 물어보시고, 이것도 모자라 술이 불콰하신 아저씨들에게 “아줌니, 아줌니”소리를 들으며 막걸리나 소주 마시기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20대 초반, 연극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을 때에 상상한 나의 미래는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관객’이 주는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마당극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프로 무대(?)에 선 것은 한양대 노천극장에서 1990년 10월 말에 공연된 ‘노래판굿 꽃다지 2’였다. 한양대 노천극장을 가득 메운 몇 천명의 노동자 관객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은 영화배우로 유명해진  박철민 선배와 함께 민중 방송국의 기자 배역을 맡았다.  

무대에 있는 박철민 : “투쟁 현장에 나가 있는 이기자 불러 보겠습니다. 이기자, 우리 씩씩한 이기자 어디 있습니까?”

객석에 마치 관객처럼 앉아 있던 나, 벌떡 일어나 : “네, 발 빠른 이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00 투쟁 현장에 나가 있습니다. 여기는 지금 투쟁의 열기로 아주 뜨겁습니다....”

객석 속으로 조명이 나를 향해 쏟아지자 내 근처에 앉아 있던 관객들도 고스란히 비쳤다. 얼떨결에 함께 출연하게 된 관객 배우들의 그 쑥스러워하던 모습들이란. 깜짝 놀라는 사람, 얼굴을 가리는 사람, 내가 대사를 마치고 조명이 꺼지자 나를 보고 이것저것 말을 거는 사람까지…. 그때는 그들과 내가 배우와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의 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였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벌인 축제판에서 배우와 관객의 구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극의 3요소가 무엇인지 아시는지? 요즘 시험에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학교 연극 수업을 나가면 외우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희곡’과 ‘배우’ 그리고 또 하나가 ‘관객’이라고. 그럼 연극의 4요소는? 여기에 ‘꽃다발’을 더한다. 우스개 소리로 떠도는 이야기지만 연극에서 ‘관객’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것이라고 해석해보기도 한다. ‘꽃다발’이란 연극의 감동에 바치는 관객의 헌사요, 각성제가 아니겠는가?

2003년 난생처음으로 외국 공연을 갔다. 그것도 한 달 동안의 콜롬비아 전국 투어, 그리고 일주일 동안 쿠바 아바나 연극제에 참가하는 대장정이었다. 야외연극을 관람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남미에서 벌이는 공연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물론 동양 문화가 그저 신비로운 그들에게 우리의 탈춤과 풍물, 전통 의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고, 색다른 문화 체험이었을 것이다.

공연 예정 시간 두 시간 전부터 관객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어 객석을 메우기 시작한다. 서두르지 않는 민족성을 십분 발휘하여 무대 스텝들은 느릿느릿 움직이고, 공연 시작 시간이 30분씩 늦어지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별로 동요가 없다. 조용히 앉아 공연을 기다리고 시종 즐거운 표정이다. 우리나라 야구 경기장에서 봄직한 장사꾼들이 관객들 사이를 바삐 움직이며 음료수나 과자를 팔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자 장사꾼들은 자취를 감추고, 관객들은 음식 먹기를 멈추고 공연에 집중한다. 재미있으면 크게 웃고, 반응을 해야 하는 장면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하는 커튼콜에서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멋지게 꾸며진 대극장이 아니라, 성당 앞 광장 협소한 돌계단에 반바지와 샌들 차림으로 앉아 있던 1,000여 명의 관객들이 만들어낸 광경이다.
  
한잔 걸치고 나면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음주가무’의 대가, 한국 관객들도 공연 때는 무뚝뚝하기 그지없고 그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야외 공연에서 공연의 집중도를 만들어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공연 관람’이란 서양식 대극장에서 정장을 차려입고 숨소리도 내지 않으며 보는 것이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야외 공연은 ‘예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얼마 전 경기도 장호원읍 5일 장터 공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너무 더운 날씨라 관객들도 힘든 공연이었는데, 어린이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이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헉헉거리며 정리를 시작하는데 10살 남짓한 여자 아이 한 명이 다가왔다. “오늘 공연 재미있었어요” 의젓하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한다. 나는 다음 공연에 친구들 데리고 오라며 전단을 오십 장쯤 주었다. 그런데 정리가 끝날 때쯤 그 여자아이가 전단 다 나눠주었다며 다시 왔다. 이번에는 친구도 한 명 붙었다. 나는 ‘요것 봐라, 맹랑한데, 그래 어디 고생 좀 해봐라’ 생각하며 아예 2백 장 정도를 안겨 주었다.

공연장 마무리를 한 후 저녁식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갈 때 우리는 경악하고 말았다. 그 여자아이가 꼬붕 두 명을 거느리고 온 장터에 전단 도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앞 유리에 전단이 다 끼워져 있고,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전단을 주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공연 보러 오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세 아이 모두 얼굴이 시뻘건 채….  

대부분의 ‘예술’ 공연들은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시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생활공간으로 찾아가는 우리 마당극 배우들은 그저 관객들 삶의 일부가 된다. 그날 그 아이들은 우리 극단의 공연단이 된 것이다. 우리는 “저 녀석, 나중에 세계적인 기획자가 될 거야. 아니면 국회의원 되든지” 하며 웃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는 이런 공연이 반가우시다. 어릴 적 장터의 추억도 살아나시고 지루한 일상에 하나의 이벤트가 되는 것이다. 하나 두려운 게 있으시다면 돈 내놓으라고 할 까 봐 그게 걱정이신 거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필시 저러다가 내 앞에 ‘약’을 내놓으며 돈을 내라고 하겠지‘ 하는 생각에 발 한쪽은 통로를 향해 내놓으시고 엉거주춤 앉아 계신다.  

“팔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그럼 뭐하러 이걸 하는 거여?”

공공기금으로 소외된 지역을 찾아 공연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진 요즘, 적당한 말을 찾기가 어렵다.

“내 평생, 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대단하게 차려놓고 그냥 하는 게 이해가 안돼야”  

공연 끝까지 이해가 안 되신 여주의 어떤 어르신. 공연이 끝난 후에도 믿을 수 없다면서 우리 주위를 빙빙 도신다. 왕년에 서커스 단원이셨다니까 더더욱이 이해가 안 되시는 것이다. 결국은 공연에 쫓아온 선배의 아이들에게 용돈 하라며 3,000원을 내놓고 가셨다. 이 정도면 약과이신데 그래도 끈질기게 물어보시는 분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어르신들 즐거우시라고 나라에서 하는 겁니다”
“나라? 그럼 국민들 세금으로 하는 겨?”
“네? 뭐 그렇다고 봐야지요”
“아니 세금으로 이런 걸 왜 하는거여, 먹고살기도 힘든데. 대통령이 문제여!!!” 갑자기 정치권 성토대회로 바뀐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그래, 뭐 팔러 왔어?"
“우리 신명과 흥을 팔러 왔습니다. 신명 나게 잘하면 한 푼 줍쇼!”
공연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어느 어르신이 외친다.
“아녀, 아녀, 장단이 틀렸어!”
허걱! (배우들은 기가 죽었다)

다음 공연에는 중요한 ‘소품’을 준비해야겠다. 바로 ‘막걸리’라는 알코올 음료의 일종인데 ‘막걸리’도 없이 우리 실력으로 어찌 어르신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내일은 또 어떤 관객의 삶 속으로 또 들어가게 될 것인지, 항상 다른 삶을 만들어 주시는 관객 어르신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다*
  

(이글은 2005년경  한 인터넷 매체에 쓴  글인데, 지금은 그 기록을 찾기 어려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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