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은 다르고 모두에겐 '누가' 있다.
sns 7시간, 불면, 자기혐오, 담배 4분의1갑.
이 네가지 먹구름은 오늘 밤 나를 익사시키기에 충분한 양의 비를 내렸다. 모험을 걸어볼만한 알코올이라는 구름이 하나 더 있는데 운이 좋으면 수면으로 이끌지만 일이 좀 틀어지면 나머지 구름들을 모두 흡수해 덩치를 불리곤 한다. 변신로봇들의 파워가 그렇듯이 합체는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로 이루어진다.
이럴 때면 항우울제를 중단한 시점을 기준으로 삶을 재기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세보전진 백보후퇴의 결과를 낳는다. 실패이고 도통 가망이 없다. 고통과 안정 그 어느쪽도 잡지 못하는 굴레에 갇힌 듯한 이 느낌은 죽음의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자꾸만 내 발을 옮긴다. 7시간을 죽음과 만물에 대한 무가치감으로 이끌린 결과는 어떨까. 별로 그렇게 드라마틱 하지는 않다. 그냥 지친 정신과 육체가 남는다. 죽음에 대한 나의 자세는 수동적이다. 우울이 나를 끌고갔고 나는 질질 끌려갔다. 아마 ‘질질’은 곧 저항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에 대한 증거로 나는 출근까지 남은 2시간을 잠에 쓰지 않는다. 뜨거운물로 샤워를 오랫동안 하고 좋아하는 향이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누가 맡는다고?) 그리고 면도를 한다.(누가 봐준다고?) 에프터쉐이브가 주는 고통을 즐기고 습기없이 온몸을 바싹 말린다. 단정하지만 활동이 편한 옷을 갖춰입으며 언제든 현실로 뛰어들 준비를 마친다.(누가 찾는다고?)
바지는 디키즈가 좋고 상의는 스웨트셔츠라면 뭐든 좋다. 5부 팬츠에 긴팔 스웨트셔츠만 일년내내 입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