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함을 만드는 일
깊게 잠들만한 피로를 안고 잤다고 확신했는데 간밤에 2번이나 깼다. 난타꾼의 쇠드럼통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굉음이 문제였다. 차사고도 아니고 폭죽소리도 아니고 빗소리였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약간의 공포를 자아냈다. 다행히도 수면 중에는 깊게 잠들었었는지 7시 즈음 눈을 떴을 때는 내 마음도 바깥날씨도 고요해진 상태였다. 우리 집은 나이가 환갑정도 된 장년층이라 근래 기와를 교체해 주었는데 새 기와가 아닌 기와모양으로 된 강판으로 공사를 했다. 폭우나 소나기가 쏟아질 때 알게 모르게 소리가 더 울리고 증폭되는 것이 그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생각을 더 구워 부풀려 보아야겠지만 최근의 나에 대해 ‘아하’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아하’했다는 말은 나의 상태를 언어로 명확히 표현했다는 말인데 선명할 정도로 명확하지는 않으나 현재로서는 흙을 파고 파다 번쩍이는 무언가를 본정도의 감각이다. 그리고 ‘최근의 나’라는 것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던(겪고 있는) 근 2년간의 시간 동안의 나를 말한다. 허리디스크환자가 약과 수술로 끝나지 않고 이전의 자세를 돌아보고 치료 후에도 바른 자세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정신적인 아픔도 육체적 아픔과 많이 닮아있어서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전 내가 겪은 모종의 사건은 단지 디스크를 터지게 했을 뿐이지 우울증이 걸릴 수 있는 조건을 나 스스로 꾸준히 축적해 왔다는 생각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잘잘못의 문제는 아니고 ‘이랬기 때문에 이랬구나’ 같은 있는 그대로의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을 뚫고 나가고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스스로가 ‘극복과 받아들임의 경계’에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와닿았다. 최근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라면 최근의 나를 만든 과거의 삶도 설명할 수 있다는 희망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 한 개씩 쌓아가는 불확실함 속의 분명함 들은 살아가는데 든든한 기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