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에 없던 휴가를 받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회사가 전체출장을 가는 바람에 나는 강제로 이틀을 쉬게 되었다. 한동안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꼈었는데 잠시 씁쓸해졌다. 유급으로 쉬는 것이 불가능한 나는 일을 하지 않는 만큼 월급이 줄어든다. 단기로 일을 구해 줄어든 월급을 메꾸어야 할지에 대해 선택해야 했다. 마침 시간이 맞는 일이 구인구직어플에 있었다. 그러나 결국 하지 않았다. 조급함과 완벽주의가 다가올 때 울리는 경고등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하는 일을 일종의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벼운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업무의 난이도가 높지 않고 작년에 경험이 있던 일이며 일면식이 있는 분들 사이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었기에 항우울제복용 중단 후 새 출발을 하는 시기에 알맞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시작했다. 애초에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현실에 던져놓기 위한 일이었다. 그러나 돈이라는 자극적인 방해물이 다가오자 나는 흔들렸다. 한 달을 생활하고 소액이지만 저축도 해볼 수 있는 금액을 받으면서도 그 이상을 계속 욕심내고 있었다. 점점 내 삶의 목적이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는 타인 혹은 직접 만든 허상에 맞추어지고 있었다. 이 일을 당장 그만두고 노선을 변경할 것이 아니라면 단순한 욕심으로 전락해 버릴 생각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5만 원, 10만 원 같은 적은 금액의 득실에 너무 전전긍긍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꾸만 드높은 허상을 만들어 자신을 비하하고 무력감이 들도록 만들고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무슨 전쟁터가 아닌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이런 일종의 경고등이 뜨자 나는 돈에 대한 모든 생각을 다시 고쳐먹기로 했다. 어떻게든 아껴서 10만 원이라도 저축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먹을 것을 못 먹어가면서 얻을만한 금액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틈틈이 투잡을 하려 했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 마음의 근원이 사람을 마주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하고자 하는 데 있지 않고 그저 한 달에 50만 원만 더 벌면 좋겠다는 단순한 욕심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일상을 보내는 것만 해도 막대한 체력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더 나아지기 위한다는 마음이 되려 내면을 힘들게 한다면 그리고 그 내면의 힘듦이 나아가 일상에 영향을 준다면 나아짐의 기준과 발전적인 생각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항우울제복용을 중단하고 2년 만에 사회인으로 새 출발 하는 사람에게 당장 30만 원 50만 원을 남들보다 더 버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일반적인 삶의 경로에서 잠시 이탈했다면, 원래 속도가 좀 느리다면, 다수의 선택에 자꾸만 의문이 든다면 스스로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결국 다수 속에 섞여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방구석에서 아무리 다짐을 해도 문밖의 현실자체가 우리가 세운 기준을 자꾸 깎아내린다. 비판한다. 보잘것없어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에는 우리도 그 다수 중 하나일 수 있다. 결국 눈앞에서 우리를 직접적으로 깎아내리는 이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단순한 해프닝정도일지 모르고 예상외의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실제로는 현실과 자신을 곡해해서 받아들이는 스스로의 관점자체를 경계하고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방안에서의 내 계획은 아무 문제가 없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 단지 깎아지지 않는 원석일 뿐이다. 문밖으로 나가는 일은 그것은 세공하는 일과 같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원석을 가지고 있어야 세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를 믿고 세운 다짐과 계획을 끝까지 품에 안고 오늘도 문밖으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