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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 designer Nov 21. 2020

【영화】후지코 헤밍의 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요즘 나는 영화를 집중해서 끝까지 보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짧은 영상, 유튜브 위주로 콘텐츠를 접하는 기회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 집중력을 요하는 것들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은 대게 마음 속에 흔적을 남겨서 오랫동안 곱씹게 한다.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발견한 보물과도 같은 영화.

「후지코 헤밍의 시간」 이 바로 그러하다.


시간을 잃다.


후지코 헤밍 그녀의 본명은 잉글리드 후지코 게오르기 헤밍 (Georgii-Hemming Ingrid Fuzjko). 그녀는 러시아계 스웨덴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독일 베를린.

디자인을 전공한 아버지와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는 베를린에서 유학하던 중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려 하던 때였다. 일본으로 가족이 이주했지만, 아버지는 일본에 적응하지 못한 채 가족을 두고 혼자 스웨덴으로 귀국한다.

어릴 때 부터때부터 음악과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녀는 어머니의 피아노 스승에게 피아노를 사사하고 東京藝大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였다. 그녀는 고등학생 때부터 여러 콩쿠르에 입선, 필하모닉과 교향악단과 협연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며 대학 졸업 후에는 어머니처럼 베를린에서 피아노 공부를 하고자 했지만 여권 신청 시 무국적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렸을 때 일본에 와서 쭉 일본에 살았던 그녀는 당시 일본의 부계 혈통주의에 의해 일본 국적 또한 취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20여 년간의 인생이 부정당했다.  

초등학생 시절의 그림 일기장.   


그녀는 10년이 지난 30살이 넘어서야 독일에 난민으로 인정받아 베를린 유학 길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졸업 후에도 틈틈히 연주 생활을 이어나갔지만 극심한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지구상에 나의 거처는 어디에도 없다... 천국에 가면 나의 거처가 기다리고 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녀는 이렇게 자신에게 타 이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 그 안에서도 그녀는 피아노를 놓지 않았고, 꾸준히 틈틈이 피아노 교사 생활을 이어가면서 유학의 길을 모색하였다. 졸업 후에도 유럽 각지에서 장학금과 조금의 생활비를 지원받아 피아노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세상은 더 모질게 굴었다.   


청력을 잃다.


 어쩌면 우리들은 흔히 위대한 예술가는 장애를 딛고서도 불후의 걸작을 만들어 후대에 널리 이름을 알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청력을 잃고도 작곡에 전념한 베토벤이 그랬고, 신체장애와 어려움 속에서 그림을 그린 프리다 칼로가 그랬다. 비단, 예술가뿐만 아니라 으레 위인전집에 나오는 인물들의 서사가 그러하다. 어려움을 겪고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내는 사람들.

어렸을 적에는 이러한 위인전집에 무척 감명을 받았지만, 점점 그러한 감각에 무뎌지고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선을 긋고 우리는 곧 잊어버리고 다시 현실에 몰두하고 만다. 그러나 후지코 헤밍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과장된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장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바라고 바라던 유학 끝에 재능을 인정받아 저명한 지휘자와 함께 솔로이스트로 무대에 서는 날 그녀는 청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회는 그렇게 거품처럼 떠나가 버리고 그녀는 다시 정처 없는 방황을 한다. 청력을 잃고 연주자로서의 경력도 중단해야만 했다. 치료에 전념하면서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할 때 그녀는 음악교사의 자격증을 취득해 유럽에서 피아노 교사로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일본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의 이야기가 큰 반향을 일으켜 NHK 드라마까지 제작된다. 그 후로 그녀는 예기치 못하게  피아니스트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다. 발매한 데뷔 음반은 30만 장이 팔려나가고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지로 연주를 다니게 되었다.

그녀의 나이만 60세의 일이다.

인생이란 시간에 걸쳐 나를 사랑하는 여행.


돌고 돌아서 다다른 길


후지코 헤밍은 결국 그녀가 바라고 바라던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2020년 현재까지도 연주활동을 활발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세상이 포기하라고 할 때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다면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이라도 해서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비록 그 길이 아주 멀고 험난한 길이였지만,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녀의 간절함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손을 놓지 않는가. 이 질문해 대답하기에 자신이 없다. 그녀는 인생이란 시간에 걸쳐 나를 사랑하는 여행이라고 한다.

나도 시간을 들여 나를 사랑하고 돌보려고 한다.  


La Campanella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녀의 앨범을 들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리스트의 곡들의 표현이 정말 좋다. 그녀는 정해진 대로 악보대로 치는 성격이 아니다. 오롯이 그녀가 느낀 감정들이 연주에 무의식적으로 자유롭게 표출된다. 그 자유로움이 호불호가 갈릴 지라도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후지코의 어린 시절을 엿보는 느낌이라 애착이 간다. 특히 그녀가 연주하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는 내가 들어 본 라 캄파넬라 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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