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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내게 행복을 알려주지 않았다

Nucleus 2025 #2

by 혜성

나는 운이 좋게도 누군가의 '행복'으로 태어나 나의 몸짓, 말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행복'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린이집에서 삐뚤빼뚤한 글씨로 '행복'이라 따라 쓰면서도,

유치원에서 어버이날 부모님께 쓰는 편지에 선생님이 써준 글귀들을 옮겨 적으며 '엄마 아빠 덕분에 행복해요'라고 적으면서도,

초등학생이 되어 게임 속에서 높은 랭크를 기록하고 "드디어 됐어! 너무 행복해!!"라고 말하면서도,

중학생이 되어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아, 드디어 끝났다! 살 것 같아 행복해" 하고 웃으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 입시의 마지막에 "엄마!! 합격했어!! 진짜 행복해" 하고 눈물 흘리면서도,,,

사실 언제나 행복이란 건 글자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스스럼없이 행복하다는 거짓말을 하며 살았다. 어쩌면 나한테도 늘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온전히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한 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잘 알지도 못하는 "행복하다"라는 말을 쓰며 사는지 궁금한 독자도 있을 것 같은데, 답은 간단하다. 다들 쓰니까 나도 맥락에 맞춰 비슷한 상황에 쓰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행복하다 말해본 게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행복이라는 게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울 때도 있다.


기억을 타고 과거로 올라가 보면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감정 공유와 소통을 배우지 못했다. 몸이 꽤나 컸을 때까지도 내 감정을 표현할 줄 몰라 속으로 삭이고 감내하는 게 일상이었고 나도 모르게 화를 내거나 욱할 때면 내가 엄청나게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 번의 화로 모두가 나를 떠날까 봐 너무 두려웠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자연스레 우울증과 공황을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상담을 통해 어린 나의 아픔과 부족한 감정 표현들을 연습해 나가며 많이 나아져갔다. 아, 물론 지금도 상담은 진행 중이다.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듣고 어린 나이에 안쓰럽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 당시 나는 애초에 내 감정을 표출해 본 적이 없으니 그리 사는 게 크게 불편하거나 답답하지도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고, 힘들 때면 그저 내가 나약한 것일 거라 생각했다. 한때는 부모님을 미워하고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때 조금만 더 신경 써주셨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픈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았으리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의 부모님이 어떠한 나쁜 마음으로 나를 방치한 것도 아니고, 사리사욕을 채우며 놀다가 나를 챙겨주지 못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그게 최선의 선택들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서툴렀던 부모님마저도 모두 사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어린 시절 행복을 알려주시진 못하셨지만 다른 것은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으니까, 이 세상에 모든 게 완벽한 부모란 없으니까, 돈이 부족해 가난하게 사는 집이 있는 것처럼 우리 집은 그냥 감정과 여유가 부족해 마음이 가난한 집이었을 뿐인 거니까. 이 모든 것을 전부 부모님의 짐으로 떠넘기고 싶지 않다.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그들의 노력과 피땀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내가 행복을 지나쳐가서 알아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행복이란 뭘까. 아무도 내게 행복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아서 깨달았어야 하는 건가. 인생은 참 어렵다. 어디까지 나의 노력 부족이고, 어디까지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환경의 악조건인 건지.

그 누구도 알려주는 이가 없다.


아무도 내게 행복을 알려주지 않았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알려줄 거라 생각했다. 마냥 기대하며 입만 벌리고 앉아 기다렸나 보다. 이제는 내가 답을 구하러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뚜벅- 뚜벅- 뚜벅- ㆍㆍㆍ

그 누구도 정의해 주지 못한 '나만의 행복'을 찾기 위한 특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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