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계사라는 길을 선택하게 된 고뇌의 흔적
내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독일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였다. 한 학기 파견이었는데 나는 한 학기 휴학을 더 하고 어쩌다 보니 독일에 6개월 더 눌러앉게 되었다. 집에만 있을 수 없으니 인턴이나 일할 거리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독일인 친구가 독일은 인턴십 구하기가 쉽다며, 한국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독일 job site에 인턴십으로 올라온 공고를 보이는 대로 지원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서류 통과는 무슨, 탈락했다고 답도 안 오는 회사가 더 많았다. 인턴십을 찾기 쉽다는 건 독일인 해당이었나 보다. 그런데 고용주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변변한 경력 하나 없고, 독일어도 잘 못하고, 데려오려면 비자까지 돈을 주고 sponsor 해줘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쓸 필요가 없었을 거다. 슬프지만 현실이 그랬다. 같은 조건이라면 당연히 독일인을 뽑겠지.
그리고 결국 이도 저도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에게는 마지막 한 학기가 남아있었다. 휴학 1년을 합쳐 도합 5년간 다닌 대학교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순간이 가까워졌다. 이 시기가 다가오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마주하는 물음 : 이제 앞으로 뭐해먹고 살지? 4년제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한 나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취준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연줄이나 어디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많이 뽑는다는 이유로 영업 직무에 남들이 다 지원하는 대기업 몇 군데 서류를 쓰고, 인적성을 보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자니 미래가 뻔히 보여서 더 싫었다. 무슨 배짱인지 막연하게도 나는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들 다 지원하니까 쓰는 거 말고, 무엇보다 내 전문성을 살리면서 계속해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으면서 미래에는 내 개인 사업도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을 찾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검색을 하다 '미국 회계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국 회계사라고? 갑자기 학부 때 재무제표 분석 수업을 들으며 괴로워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아아... 회계는 아니야..' 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손가락은 자판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서치를 계속했다. 꼭 미국인이 아니라 외국인도 시험을 응시할 수 있었고, 기본 3-5년 소요되는 한국 회계사보다 훨씬 짧은, 보통 전념자 기준 1년이라는 합리적인 준비기간이 매력적이었다. 다만, 한국 회계사는 시험을 통과하면 명함에 바로 한국 회계사라고 새길 수 있지만 미국 회계사는 그럴 수 없다. 시험을 패스하면 시험 패스 합격한 상태이고, 추가로 미국 tax나 audit 등 미국 회계와 관련된 업무를 500시간 혹은 1년 full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California 기준) 즉 실무가 동반되어야 진짜 미국 회계사로서 인정받고 license가 발급된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파워는 여타 나라와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도 훨씬 강력하다. 그리고 미국에는 좋은 기업이 많고, 세계 곳곳에 있다. 그래서 북미보다 시장은 훨씬 좁겠지만 세계 어디에나 수요가 항상 있다. 그리고 회계사라는 직업은 잘만 써먹으면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금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고등학생 때 한 성격/적성 검사가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교 때 본 mbti 유형이 7년 정도 흐른 지금도 똑같이 나오는 꽤나 일관성 있는 사람이다. 추천 직업에 회계사가 항상 있던 것이 얼핏 떠올랐다. 물론 그냥 검사일뿐이지만, 그냥 막연히 나랑 잘 맞을 것 같았달까? 고등학생 때는 재미도 없어 보이고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몰라서 고려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또 미국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세상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그렇게 나는 졸업을 몇 달 앞두고 미국 회계사 시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주위에 준비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어서 처음에는 모든 게 불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역시 사교육의 나라 대한민국에는 이 시험을 대비하는 학원도 여러 군데 있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학원을 선택하고 다시 고등학생처럼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삶이 시작됐다. 처음 몇 달은 재밌었다. 수능과 달리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초반에 배운 내용들은 학부 수업 때 기초로 다루었던 내용이라 상대적으로 쉬워서 배울 맛이 났다. 하지만 계속 양이 누적되고, 내용은 어려워지고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이 시험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고 미국 본토나 미국령(괌)에 가서 봐야 하는 시험이다. 한국인들은 시차가 적고 비교적 가까운 괌까지 시험을 보러 간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비행기는 줄줄이 취소되고, 해외로 나갈 경우 괌에서 자가격리 2주와 한국에 돌아와서 자가격리 2주가 필수였다. 비용, 여건 상 그렇게 할 순 없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됐고, 언제 시험을 볼 지 모르니 공부가 계속 늘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기 시험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회계사라는 직업의 단점만 보이기 시작했다. 비지 시즌에 새벽까지 야근은 기본에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굉장히 outdated한 직업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에 대한 본질적인 동기가 부족했다. 초반에는 그냥 회계사, 전문직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과 돈이었다. 하지만 이 둘을 만족하는 직업은 회계사 말고도 많았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왜 회계사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why? 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