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계사라는 길을 찾게 된 고뇌의 흔적과 내 꿈
누군가에게는 그냥 이력서에 한 줄 더 쓸 수 있는 플러스 알파 정도의 스펙, 미국회계사 시험. episode 1에서 말한 것처럼 나 역시 전문직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과 높은 연봉 이 두가지 때문에 선택했다. 나는 꿈이 없었다. 나는 국내 4년제 대학교에서 경영을 전공했고 한국 회계사를 준비하는 지인들은 꽤 여럿 있었지만, 미국 회계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질 못했다. 그래서 혼자 리서치를 계속 했다. 찾은 결과의 요약은 대강 이러했다.
1. 미국회계사는 한국회계사보다 쉽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다.
2. 비용이 많이 든다
3. 회계법인에서 USCPA 소지자를 뽑을 때는 영어를 native or business fluent 수준으로 하는 지원자를 뽑는다. 그래서 영어권 거주 경험이 있거나 해외대학 졸업자로 뽑는다. 회계법인에서 국내파 USCPA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정도. 시험 pass 자체는 실무 경험이 없으니 license도 없고, 이걸로 미국에 바로 취업하는 건 불가능하다. 경력도 없고 미국 시민권도 없는 외국인을 데려오면 회사에서는 스폰서를 해줘야하는데 왜 굳이 그러겠는가?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대학교에 찾아서 캠퍼스 Recruiting을 통해 관심있는 학생들이 그를 통해 회계법인에 입사하고 실제 업무를 하면서 과목을 하나하나 공부해서 시험본다. 한국처럼 시험만 보고 합격하는 건 미국에서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럼 한국에서 이 시험을 합격하고 갈 수 있는 루트는 국내 Big 4 회계법인에 취직하거나, local 회계법인으로 가거나 혹은 일반 기업, 금융공기업의 Finance팀에 입사, 은행이나 다른 금융권 입사 지원 정도. 가장 전문성을 잘 살려서 가는 건 회계법인에 입사하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Big 4에 입사하면 글로벌로 인정받는 경력과 함께 Big 4는 세계적으로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공유되기 때문에 이후에 해외로 나가기도 수월하다. 근데 Big 4는 일단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고, USCPA 지원자는 영어 실력를 매우 잘해야한다. 그래서 주로 해외 대학에서 졸업하는 사람들을 뽑는 것이다. 시험 자체는 어느 정도의 독해력만 있으면 합격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실제 영어가 안 되면 이 시험을 합격하는 데 투입한 비용과 시간 대비 효용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가진 해외경험이라고는 대학생 때 다녀온 독일 교환학생 한 학기. 심지어 영어권도 아니다. 내가 이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건 Finance쪽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요즘 웬만하면 가지고 있는 자격증이라고, 영어권에서 살다 온 경험이 없으면 우리나라에서 써먹기 힘들거라고. 대부분 4-50대의 어른들이 그랬다. 나라고 그런 말들이 신경 안 쓰였을까? 처음에는 그런 말들에 휘둘렸다. 1년 넘게 공부해서 힘들게 땄는데 돈이랑 시간만 버리는 거 아닐까?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내가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끝을 봐야하는 성격이라,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 영어는 native level은 아니지만, 항상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 영어 공부를 계속 해왔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면 상대방이 미국에서 산 적 있는지 항상 물어보는 정도의 수준까지 늘렸다. 고등학생 때는 버스를 타는 이동하는 시간에도 mp3로 영어 지문을 들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책 페이지를 통째로 외우고 영어로 혼잣말하곤 했다. 당시에는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 시간들이 조금씩 쌓이고 쌓여 지금의 수준까지 온 것 같다. 물론 언어 공부는 끝이 없지만.
한 때 어떤 직업이나 돈 그 자체가 내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결국 회계사 되고 일반 기업보다 연봉 좀 더 받으면서 일하는 게 내 '꿈'인가?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런 피상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은 절대로 꿈이 될 수가 없구나. 내가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는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영화 '소울' 이 주는 메시지 역시 같았다. 직업은 꿈이 아니고 정말 가슴을 뛰게 하는 자신만의 불꽃을 찾으라고, 그게 당신의 꿈이라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게 뭐지? 그리고 여러 밤을 고민으로 지새운 끝에 찾은 것 같다. 금융지식의 보편화. 내 인생의 장기적 꿈이자 비전이다. 가진 걸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내 간절한 꿈.
대학을 가지 못하면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나라에서, 이런 사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 들어야 하는 이들도 있다. 오롯이 내 능력과 노력만으로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이 좋게 난 당장 생계 걱정할 필요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공부했고, 등록금 걱정도 크게 하지 않았다. 학사 학위까지 있다. 사람은 보통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사귀기 때문에, 내 주위는 나와 비슷하거나 더 여유로운 사정의 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사회의 음지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처지까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역대 최고 취업난이라는 기사가 쏟아지는데, 이기적이게도 나 하나 걱정하기도 바빴다.
부끄럽지만 난 아주 최근까지도 내 부모님이 더 배운 사람이었기를, 더 깨어있는 사람이기를, 또 내가 더 여유로운 집에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남들은 걱정없이 일년에 몇 번은 가족 여행도 가고, 무언가 갖고 싶은 게 생기면 부모한테 당연하게 요구해도 받아내는 걸 주위에서 오래 봐왔다. 그로 인한 결핍, 열등감, 부재 등이 쌓였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했다. 인생의 슬럼프가 찾아올 때마다 탓을 외부로 돌렸다. 그래서 평생 그렇게 남 탓만 하면서 살거야? 비난과 힐난은 쉽다. 내 부모님은 배우지도 못했고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장사를 20년 가까이 해왔다. 남에게 폐 끼치며 사시는 분들은 절대 아니고 그냥 평생을 바보같이 일만 하며 사신 분들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따위는 투자할 목돈도 없지만, 그런 것들은 도박이라고 생각하는 흔히 말해 금융 문맹. 평생을 그렇게 믿고 살아오셨으니, 옆에서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셨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금융 지식은 꼭 필요한데, 이러한 전문지식은 배제성이 강하다. 일반인들은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 그룹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만 향유된다. 내가 감히 할 수 있다면, 배울 기회가 없었던 이들 혹은 어린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금융 지식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던 이 시험은 결국 1년 조금 더 넘게 걸려, 드디어 끝났다. Finally d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