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간의 인턴 일지
한껏 부푼 마음으로 출근길의 지하철에 올라 불편한 신발과 어색한 옷을 입었던 첫 출근 날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첫 인턴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첫 사회생활과도 다름없었기 때문에 긴장되기도 하고 동시에 설레기도 했다. 양복을 입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나도 드디어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디딘 느낌이 피부로 와닿았다. 그렇게 여의도의 랜드마크라고 불리는 빌딩 중 한 군데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아서 올라가니, 나와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될 인턴 분들이 기다리고 계셨고 어색한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했었다. 그렇게 내 첫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시국이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팀의 업무가 회의가 잦은 프로젝트성 업무보다는 혼자서 컴퓨터 앉아 개인이 맡은 client의 tax return을 해주고 이슈를 처리하는 업무라 재택인 날이 사무실을 나가는 날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도 사무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좋았고, 바로 보이는 한강뷰는 더더욱 좋았기 때문에 며칠은 사무실에 일부러 출근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회사가 집에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재택으로 일하는 건 몸이 편하고 좋아서 마음껏 눈치 안보고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4대 회계법인은 이사님 이하로 전부 서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서 불렀는데, 직함에 얽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짧다면 짧은 3개월 동안 tax return filing의 서포트 업무를 맡게 되었다. 업무 자체는 어렵다기 보다 꼼꼼함을 요하는 일이어서 여러 번 double-check을 하는 게 훨씬 중요했다. 인턴을 통해 무언가 전문 지식을 쌓는다기 보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회사 생활은 어떤지 눈으로 보고 앞으로 커리어를 쌓을 때 어떻게든 도움이 될 지 모르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팀 프로젝트보다는 혼자 일하는 편을 선호하고, 자료 찾아보고 읽는 일이 굉장히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기본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시장의 큰 흐름을 읽고, 그와 관련된 숫자들을 보고, 의미를 읽어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숫자들은 개인 client의 연봉, 주식이나 배당금 같은 개인소득 등이었는데 굉장히 micro적이었고 시장의 흐름과 전혀 무관한, 나에게 의미가 없는 숫자들이었다. Deal, Valuation, M&A 등 조금 더 큰 시장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투자 쪽에서 몸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고,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헀다.
미국 회계사 시험을 공부해 합격하고 회계법인 인턴에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금융계에서 일해야겠다 정도의 방향성을 정했다면, 인턴은 그 중에서도 어느 업무를 하고 싶은지 더 구체적으로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해보지 않기 전에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떤 필드에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을 것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고, 학교나 시험을 통해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는 그 이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만들어 준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