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 도착한 지 어느덧 꽤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지구의 중력은 무겁기만 하다.
적응할 만도 한데 아직도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 같이 나에게 버겁기만 하다.
타지 생활이라 그런가 고향을 떠나와서 그런가 나에겐 지극히 쓰리고 쓰린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간직이란 말이 맞나.
맞다고 하는 수밖에.
이래나 저래나 나는 외로움이 마치 끈적거리는 땀처럼 붙어 떨어질 수도 없는 그런 상태였다.
간직이란 말로 포장하며 이 외로움이란 그림자와 함께 사는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각자의 삶에서 본인이 주인공이듯 나의 삶에서 내가 주인공이라 누구나 하나쯤 겪는 비운의 시련이 있다.
익명성에 기대어 누가 서운하지 않게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내게 친구는 시절인연이었다. 누구나 겪는 시절인연들이 있지만 내겐 지나가는 인연들이 모두 시절로 끝난 게 문제였다.
그 친한 친구, 베스트 프렌즈, 그런 거 하나 없는 외로운 인생.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친구 하나 없는 삶을 지금 살고 있다. 이것은 고독의 역사인지, 외로움을 말하는 상투적인 외침인지 분간이 어렵다.
안타깝게도 나의 피부치(형제)도 친구가 없다.
우리는 재미 삼아, 자조 삼아 말하고 한다.
분명 저주를 받았거나 조상의 업보를 받았다고 말이다.
조상 중 얼마나 큰 배신을 했길래 설마 다른 이에게 보증을 서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조소 섞은 말을 하며 우리의 처지를 비웃는다.
학생 때부터 돌아가도 그랬다. 나는 항상 이상했다.
물론 이상한 이유는 내가 지구인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들과 섞이기 힘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코드가 맞지 않았고 딱히 재밌지도 않았고 가짜 웃음을 짓곤 했다.
애써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대화에 참여하는 리액션을 취할 뿐 내가 나서서 얘기를 하진 않았다.
그랬다. 그런 대화는 이제 지겹다. 나는 그래서 굳이 친구를 만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 마치 친구가 전부였던 세상에서 나에게 아주 해로운 세상이었고 어쩌면 벗어나서 다행일지도.
그러나 이런 내게도 외로움은 존재하였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이왕 지구인이 아니라면 외로움 마저 몰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느덧 이러한 생활에 적응이 되었는지 땀과 하나가 되었는지, 그림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묵묵히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대견해.
인간관계에 연연할 나이도 지났고 나 혼자 건사할 나이가 되었는데 그 당연함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다른 별에 도착했을 땐 외로움을 모르는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