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자국이 나란히 날 때가 있다. 평행선을 이루다 두 갈래로 뻗어 나아간다. 조금 쓸쓸한 발자국 하나가 뒤를 돌아본다.
우리는 어둠 속을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정확히 가로등 아래를 걸었는지, 불빛이 달리는 차 안이었는지, 서로의 커피잔만 마주 보던 동네 카페였는지, 기억의 소용돌이에서 제대로 알 순 없다. 다만,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의 숨보다 오래 남아 어딘가 쌓였을 거다. 두꺼운 고민들을 꺼내며 위안을 삼고자 함을 봐서 분명 날이 찬 겨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붕어빵 가게도 낙엽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겨울밤은 투털대기 좋은 장소였다.
어느 죽음에 대해 말을 주고받았다.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익숙한 사람의 부재는 참으로 허망하게 다가온다. 그는 죽음이 어렵게 느껴져 보였다. 가까운 사람이 떠나가고 남은 사람이 줄 수 있는 건 꽃이 전부다. 꽃 중에서도 아직 생기 있는 꽃을 고르는 것은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한 편, 당신의 이별이 아직은 안 믿긴다는 것이겠지. 소중한 꽃을 보고 잘 지낸다는 말을 다시 듣고 싶을 뿐.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처음이라 낯설고 어딘가 싱거운 꽃을.
떠나고 사라지고 돌아서는 이별들이 늘어난다는 것에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떠난 간 모든 것에 대한 추모였다고 시간이 지났기에 의미를 붙여본다. 말과 말 사이에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익숙해서 지루하고 익숙해서 소중한 것들과 헤어지는 과정'이란 걸 새삼 알았다. 제일 큰 상실은 '우리의 청춘과도 안녕이겠구나, 우리의 투정도 볼품없구나.' 그런 아쉬움이었다. 이별을 생각하는 이 밤이 무척 세차게 느껴진다
헤어지기에 아직 남은 길이 적잖았고 그의 밤은 안심한 듯했다. 눈에 보이는 가까운 가게에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크게 뜬 뒤 볼에 굴렸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하는 윤활유였다. 옥구슬 덕에 입 안은 부드러웠고, 채도가 조금씩 다른 가로등에 풋웃음이 나왔다. 그는 한 스푼 입에 넣으며 내게 물었다. 나는 "음"만 네 번 외쳤다. 어떤 이별을 마주하고 있는지 고민했다기보다 어떤 이별을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바람에 묻히길 바라듯 작게 답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시끄럽고 재밌고 그런데 내가 외로워져."
이 모순적인 감정을 알아채기를 바랐다. 아주 먼 이별도 보는 당신이 아주 가까이 있는 나의 적막함을 눈치채기를 바랐다.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차마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그들과의 대화에 빠져나와 딴짓을 했다. 마음 위로 심술이 올라타고 그 위로 질투가 올라타고 더 위로 수치가 올라탄 뒤 꼭대기에서 낙하한다. 끝없이 추락하고 나면 무중력 공간에서 휩쓸려 버리기.
그는 곤란한 얼굴로 말을 얼버무렸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마침 다행이라고 여기듯 우리의 밤이 끝나서 더 이상 말을 더하지 않았다.
혼자 집으로 오는 길에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 순진하게 굴었단 것이다. 나는 나의 돌을 던졌고 돌은 너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냥 돌일 뿐인데 너에겐 돌이 아니구나. 어쩌면 바위, 그 너머 짐일 수도 있겠단 씁쓸함이 들었다. 쉽게 남에게 슬픔을 보이지 말아야겠다. 공감받지 못하는 슬픔은 더 큰 상처로 돌아온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마음이 가는 시집을 발견한 적이 있다. 제목은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다른 이의 상처를 꽃으로 대했지만 자신의 상처는 돌로 남아있는 내게 위로가 돼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