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 오른 순간 난 사랑에 빠져버렸다.
영국, 하면 자연스레 런던이 생각나고, 그 다음으론 축구, 맛 없는 음식, 영국식 발음 그 정도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되는 건 바로 사랑스러웠던 도시 에든버러.
7월 초에 에든버러에 도착을 했을 당시 저녁 열한시임에도 어슴푸레한 하늘이었다. 공기는 축축했고 사방에서 위스키 냄새가 나는 듯했으며 배불뚝이 아저씨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랬다, 나에게 에든버러의 첫 인상은 할아버지 옷장에 든 오래된 위스키같았다. 칼튼힐에 오르기 전까지는.
나와 친구는 저렴한 숙소를 찾다보니 에어비앤비를 구하게 되었고 우연히도 칼튼힐 바로 앞이었다. 집 앞이니 산책삼아 한 번 오르기로 하고 나섰는데 가는 길을 찾질 못해 공동묘질 통해서야 겨우 언덕을 올랐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얼마나 완벽한 위치의 숙소인가를!
칼튼힐에 오르자마자 보인 풍경은 어둔 먹구름이 낮게 깔린 아래로 오래된 건물이 빼곡히 자리잡아 있었다. 심지어 이 위의 사진은 에딘버러의 뉴타운을 찍은 것이니, 다른 방향은 훨씬 오래된 건물이자 도시의 모습이 있었다. 이 도시의 역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도시가 주는 감동과 위압감에 눌려 나도 모르게 벤치에 앉아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돌아봤다. 고즈넉한 도시에 쓸쓸한 바람과 조금음 축축하고 어두운 느낌. 날씨마저 에딘버러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한 눈에 보이는 칼튼힐은 정말이지 매력적이었다.
에딘버러는 바다와 접해있다보니 서울서 비둘기 보듯이 갈매기가 있는데 이 도시에 처음 도착해 쓰레기통 위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끼룩대는 갈매기와 눈을 마주친 이후로 너무 무서워졌다.
하다못해 작은 비둘기가 사랑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갈매기에 굴하지 않고 한참을 앉아 아랠 내려다보다 식사 때가 되어 슬금슬금 내려갔다.
참, 기념촬영은 빼놓을 수 없으니 짧은 다리를 올려놓고 느낌있는 척 한 장. (7월임에도 쌀쌀해서 두께감있는 가디건을 꼭 걸쳐야만 했다.)
그리고 지도도 보지 않은 채로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인 길을 따라 식당을 찾아갔다.
셜록홈즈를 쓴 코난도일의 생가 위치에 지어졌다는 코난도일 펍. (이 곳에 오니 셜록홈즈도 해리포터도 왜 이 곳에서 쓰여졌는 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단은 물보다 싼 맥주 두 잔.
페일에일과 라거를 시켰는데 에일이 정말 맛있었다. 탄산이 없어 비교적 묵직하면서도 너무 탁하진 않은 엷은 맛이랄까.
그리고 하기스(매직팬티 아니다)라는 것이 스코틀랜드의 전통음식이라니 시켜봤다.
내장과 오트밀을 섞어 만든 우리식 순대와 같은 느낌이었다. 일단 영국에서 이렇게 손가는 음식을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이었다. 맛은 그냥 입에 안맞는 것같으면서도 괜찮은 맛. 그냥 한 번쯤 시도해보긴 괜찮은 맛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길을 따라 다시 걸어나오니 올드타운이 보였다. 올드타운이라고 해서 구역이 따로 분리된 느낌은 전혀 아니고 그저 옛 고적이 그나마 더 남아있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도시 전체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시람도 종종 보이고, 직접 만들어 파는 옷가게도 많았다. 스코틀랜드 전통의상하면 남성들이 치마를 두른 그 옷이 생각나는데, 호기심에 입은 관광객도 있고 성 앞의 군인들도 다 전통의상을 입어서 더 고전적인 느낌이었다.
꽤 추운 날씨임에도 나와 악기를 부는 모습.생경한 악기에서 나오는 낯선 선율은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가다보니 스코틀랜드 미술관도 있었는데, 사실 에딘버러 말곤 스코틀랜드에 대해 워낙 무지한지라 그냥 외관만 보고 지나쳤다.
건너편 에딘버러성을 향해 가려면 다리를 건너는데 이 곳에서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림처럼 새파란 초원위에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들, 그리고 양 옆에는 때가 탄 오랜 건물.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이 순간을 그림으로 담고 싶단 생각이 절실했다.
그리고 에딘버러에서는 정말 지도도 보지 않은 채로 정처없이 걷기만 했는데, 저기가 성일거야 하면서 계속 걸었다 (결과적으론 저긴 성이 아니었지만, 방향은 맞았다.)
여행 초기라 그랬던 건 아니고, 에든버러가 크지 않은 도시기도 하고 마냥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마냥 걷는 거리도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올드타운의 전체적인 거리 분위기는 이러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자동차나 손에 들린 핸드폰만 아녔다면 정말 기백년 전이라고 해도 헷갈릴 것 같았다. 아니 정말로 도시 안에 있는 동안 나 스스로가 그러했다. 시간이 정지한 듯, 이 곳의 시간이 2015년 여름이라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그리고 걷다보니 만난, 마치 영국 왕실의 왕관처럼 화려한 첨탑을 갖춘 성당. 성 자일츠 성당으로 기억하는데 잘은 모르겠다.
추운 날씨였지만 너무 맛있어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봤으니 지나칠 수 없어 두 스쿱씩 얹어서 먹었다.
그리고 맛있었다. (럼이 조금 들어갔다는 버터스카치가 진짜 맛있었다.)
군데 군데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악기 연주를 해주는 덕분에 더욱 분위기있게 도시를 느끼면서 걸어다닐 수 있었다.
이 곳이 바로 에든버러 성. 귀족들만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라 로열마일이라 이름붙은 길의 끝자락에 이 성이 있다.
여타의 성과 달리 우락부락한 울타리와 견고한 성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북적이는 탓에선지 별 감흥없이 내려와 홍찻집에 들렀다.
북적이는 데다 줄까지 서있던 곳이었는데 역시나, 정말 맛있었다.
스콘에 커피케이크, 그리고 다즐링이랑 아쌈을 시켰는데, 원하는 대로 우유를 타서 즐길 수도 있었다.
아 그리고 합석제라서 어떤 베네수엘라 아주머니 한 분과 같이 앉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에 사시는 단골분이셨는데 대학생 때 에딘버러에 왔다가 사랑에 빠져 이 곳에 머물게 되었다며.
우리에게 스코티쉬 남자를 조심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한참을 더 서성이다 숙소로 돌아와 해가 늦게 져 정말 긴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날 우린 또다시 칼튼힐에 올랐다.
이번엔 감자칩과 음료를 사들고 올라서 어제보다 한참을 더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