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가 된 해피
해피가 작년 2020년 8월에 새끼를 낳고 어느새 8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가을, 겨울을 지나 이제 다시 봄... 해피는 아직도 내가 처음 만난 그 자리 그대로 그곳에 있다.
계절이 세 번이나 지나고 있는 그 시간 동안 해피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새끼를 낳으면 신경이 예민해진 어미가 사나워질 거란 우려와 달리, 해피는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긋한 모습으로 새끼를 돌보았다. 사람과 차들이 오가는 길가, 컨테이너 창고 밑 좁디좁은 곳에서 새끼들은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고, 한 달이 지나자 발육상태가 좋은 새끼들이 기우뚱거리며 하나둘씩 길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가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새끼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철없는 애들은 무력한 새끼를 너무도 쉽게 어루만지고 안았다. 다행스럽게도 해피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육아에 지친 건지 자신감이었는지 해피는 그저 그런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다만 어느 날, 해피는 조심스럽게 새끼를 옮기기 시작했다.
들은 얘기에 따르면 어느 날 새끼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단다. 그런데 흘러 흘러 귀에 들려온 말에 의하면 한 마리가 사라진 후 일주일쯤 지나 어떤 아저씨가 새벽에 조심스럽게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해피 새끼들이 있던 자리에 놓아두고 갔단다.
"예뻐서 데려갔더니 못 키우겠던가 보지."
"애들이 키우자 키우자 하니까 데려갔다가 잠시 놀게 하고 돌려보낸 거 아니야?"
사람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으며 수군거렸는데, 이유가 어찌 됐든 새끼 강아지라고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경솔한 태도를 못마땅해했다.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해피 새끼가 다시 돌아왔다는 다음 날 해피가 새끼를 옮기기 시작했다.
해피는 새끼 두 마리를 학교 화단에 옮겨놓았다. 그걸 몰랐던 사람들은, 화단에서 강아지 우는 소리가 난다는 제보에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인 행정실은 서둘러 시청에 신고를 했고, 얼마 후 사람들이 나왔다. 그즈음 나도 화단에 강아지 새끼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처음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 강아지들이 학교 풀숲에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미가 데려왔다고 하기엔 너무 컸고, 스스로 왔다고 하기엔 선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니면 어미를 따라오다가 길을 잃고 이곳에서 잠을 들었는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어미는 보이지 않고 몇 시간 째 이러고 있었다 하니 나로서는 가만 둘 수가 없어 일단 박스에 넣고 데리고 왔다. 난 신고가 들어간 줄도 모르고, 학교 여사님께 입양 의사가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결국 강아지 두 마리는 시청에서 데려갔다. 나는 데려갈 사람이 이미 있다고 말했으나, 시청에서 나온 사람은 단호했다. 이미 신고가 들어간 상태이니 데려갈 사람이 있다 해도 절차를 밟아 진행하라고 했다. 이렇게 신고돼 데려간 동물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이 되고, 1차로 보름 동안 주인을 기다린다. 물론 형식적이긴 하나 주인 있는 개가 붙잡혀 올 경우가 있으니 입양하는 시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그동안 동물은 시청과 계약 맺은 동물병원에서 지내게 된다. 보름이 지나면 입양 절차를 밟는다. 즉 주인이 없는 동물로 분류되어 새로운 주인을 찾게 되는 기간이 발생하는 것이다. 보름 간의 생존 가능 시간인 셈이다. 이때 입양이 된다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되지만, 입양되지 않으면 우린 다시 그 동물들을 볼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짐작하는 그것, 안락사가 진행된다.
어떤 사람은 신고를 해서 시청에서 데려가면 동물들이 어디선가 잘 보호되고 있는 줄 안다. 동물보호단체든 동물병원이든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든 어디선가 안전한 삶을 살게 될 걸로 아는 경우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서는 신고하는 게 무조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해피를 보호해줄 곳을 찾아본 적이 있다. 비영리 동물보호단체 몇 곳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해 본 결과, 이미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키울 수 없으며 자신들이 하는 일은 대체로 사료지원이나 의료지원이라 돕기 힘들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선생님 마음은 알겠는데... 불쌍한 애들이 뭐 강아지뿐이겠어요? 어차피 이대로 놔두면 어미랑 똑같이 떠돌이 개가 되는데 그게 더 위험하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 내가 데려다 키울 것도 아니고 지켜줄 수도 없으면서 마음만 아파하는 건 값싼 동정심만큼이나 자기 연민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걸까.
원래부터 해피를 맘에 두고 계셨던 학교 여사님은, 그저 동물이 좋아서 키우시는 분이시다. 시골에서 땅 좀 갖고 계시면서 농사도 짓고 일도 다니시면서 닭 키워 달걀 얻고 개가 주인을 보고 펄쩍펄쩍 뛰며 노는 걸 보는 게 좋고, 길냥이가 오면 밥 줘서 보내는 그런 분이시다. 해피가 혼자 비 맞고 눈 맞고 다니거나 웅크리고 자는 모습을 보며 여사님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집에 가면 밥도 주고 잘해줄 텐데 왜 혼자 그러고 다녀? 네 집도 있어. 비 맞지 않게 해 줄 테니까 우리 집에 가자."
여사님이 열심히 애정 공세를 펼쳤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그 예쁜 해피가 낳은 강아지 두 마리가 여사님과 인연이 되었다.
"아니, 뭐가 그리 복잡해. 그냥 데려가면 돼지 어디서 뭘 하라고?"
여사님은 시청에서 데려간 강아지를 데려오기 위한 절차를 말씀드리자 고개를 절레절레 하시며 달갑지 않아 하셨다. 게다가 등록절차를 밟고 병원에서 주사 맞히고 하는 과정에서 돈이 든다고 하자 난색을 표하셨다. 개를 돈 주고 데려온다는 게 말이 되냐는 듯.
나는 차근차근 다시 설명을 드렸다. 일이 이렇게 된 전후 사정과 요즘은 동물 보호를 위해 이런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고. 여사님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하시긴 했지만 한 가지 남은 과제가 또 있었다.
"사실 난 저 큰 개를 데려가고 싶은 거지, 새끼는 별론데..."
여사님의 취향은 큰 개였던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내 입장에서만 새끼를 좋아하실 거라 생각하고 일을 밀어붙여버린 거였다. 왠지 내가 강아지를 거두지 못하는 내 불편한 마음을 여사님께 떠맡기는 꼴 같았다.
그리고, 입양 절차와 관련한 모든 문제를 내가 진행한다는 말을 들으시곤 여사님은 입양을 결정하셨다. 보름 후, 드디어 주인 찾는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 그때 시청에서 데려갔던 강아지 입양됐대요."
시청 사람이 왔을 때 박스에 든 강아지를 안고 같이 있던 주무관이었다.
"아, 그래요? 누가 데려가셨대요?"
"어느 마음 착한 노부부가 오셔서 데려가셨대요. 정말 잘 됐어요."
원래는 내가 여사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서 데려오기로 했던 거였는데, 여사님은 날짜도 잊지 않으시고 사부님과 함께 다녀오신 거였다. 마음 착한 노부부... 나처럼 마음이 불편했던 사람들이 그 소식에 모두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강아지 두 마리는 마음 좋은 노부부와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서.
그러나 강아지 두 마리가 시청에 가던 날, 나머지 네 마리가 사라졌다. 원래는 새끼를 데리고 있으면 어미가 따라올 거란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해피는 며칠 동안 학교 풀숲을 돌아다녔다. 갑자기 새끼를 잃어버린 해피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볼 수 있을까. 더군다나 사라진 네 마리는 어디로 간 걸까.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해피는 왜 갑자기 두 마리를 풀숲에 숨겼을까.
그 뒤로 해피를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자리 잡는다.
"네 새끼들 잘 있어. 걱정 마."
알아듣거나 말거나 말은 그렇게 해보지만, 해피와 내 관계가 참 일방적이다 싶다. 해피가 그걸 원했을까... 해피의 삶에 내가 끼어들어버린 게 즐겁지만은 않다.
겨울을 어떻게 날지 걱정하던 때, 한 선생님이 남편이 목공일을 한다면 개집 하나를 만들어오셨다. 또 다른 선생님이 담요와 겨울옷을 챙겨다 주셨다. 나름 바람은 피할 곳을 마련했는데, 겨우 내내 해피는 그 집을 이용하지 않았다. 막힌 공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건지, 붙잡힐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경계심 때문인지 추운 한겨울에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집 안은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길냥이가 잠시 쉬어가곤 했다.
다행히도 해피는 온수가 흐르는 수도관에 덮혀진 이불 위에서 한겨울을 났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의 따스한 손길 덕에 배곯지 않고 봄을 맞이했다. 또 다행인 건 임신을 하지 않아 추운 겨울에 새끼를 낳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보니, 목덜미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털 때문에 가려져 있기도 하고 내가 만져 살펴볼 수도 없어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개들끼리 싸우다 할퀴어진 상처인 듯한데 꽤 커 보였다. 사는 게 만만치 않은 건 해피도 마찬가지구나 싶다.
호화로운 곳에서 아낌없는 사랑을 받던 강아지 트러블이 하루 아침에 주인을 잃고 떠돌이 개가 된 후, 자신의 삶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스스로 인생을 선택해가는 트러블의 모습에서 감동과 교훈을 얻게 되는 힐링 영화이다. 그러나 떠돌이 개가 된 후, 많은 떠돌이 개를 만나며 나누는 대화 속에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속 인간과 개의 관계가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