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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Nov 18. 2020

인연에 대해 묻다

여섯 번째 이야기 : 가슴에 묻은 별 하나가 더 늘었습니다

18일 네가 왔고

11월 16일 네가 갔다.


이리 짧은 만남일 줄 알지 못한 것도 운명인 걸까.

미리 알았다면 달라졌을까.


부질없다.


콩이와 함께한 날들


쿠션과 빈백을 무지무지 사랑했던 울 콩이.

내가 제일 공들여 산 나만의 휴식처 빈백 위에서 볼을 비비던 너를 기억해.

언제나 제 자리인 것처럼 그 큰 빈백에 앉아 쉬고, 자고, 뒹굴던 너를 기억해.

고양이 빈백도 있다던데... 그 생각을 하다 아냐, 그냥 그거 너 가져 이런 생각을 했었어.


네 콧구멍 양쪽 모두가 회색빛 털이어서 마치 뭐가 묻은 거 같은 얼굴에

네 표정은 언제나 놀란 듯 동그란 눈에 세상 근심 없는 맑은 눈을 하고서 빤히 쳐다보곤 했지.

가끔은 멍 때리는 거 같기도 했고, 아무 생각 없는 듯하기도 했고.

옥수수처럼 내게 와 볼을 비비지는 않았지만 쓰다듬는 내 손길을 피한 적은 없었지.


네가 좋아한다는 간식을 주면 맛있게 냠냠 쩝쩝 잘 먹어주어서 네게로 가는 내 손길을 부끄럽지 않게 했어.

소리가 나는 장난감은 어쩌다 좋아한 거니?

듣기론 그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장난감 꾸러미에서 그걸 찾아내 밤새 뛰어놀다 팽개친 채 잠들곤 했지. 밤새 옥수수와 쿵쾅거리는 소리 때문에 혹시 아래층에서 뛰어올라올까 봐 화를 낸 적도 있었지. 그러면 너희 둘은 얼음이 돼서,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엎드려 앉아있곤 했는데... 물론 금세 우당탕탕 거리긴 했지만.

쫓고 쫓기는 그 장난 소리를 난 이제 듣지 못하겠구나.


콩이야, 행복했니?

언제부터였던 거야?

아픈 거였니? 여기 와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네 심장이 너무 갑자기 세게 뛰어버린 거니?

좀 더 버틸 수 있던 네 심장에 무리가 와서 그렇게 빨리 내 곁을 떠나간 거니?


돌아보면 언제나 모든 게 후회야.

언제부턴가 네가 캣타워를 올라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놀잇감을 흔들면 잽싸게 뛰어올라 낚아채던 네가 왜 안 올라가고 쳐다만 보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어제 아침에도 그랬어.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가 뛰어오르는지 보려고 놀잇감을 올려놓은 게 너에게 무리였을까. 난 모든 게 혼란스럽고 무너져.


콩아, 우리 콩이.

내 곁에 와줘서 고마워. 내가 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어서 고마워.

너를 우리 집 마당에 묻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네가 태어난 그 장소로 돌아온 거지. 고향으로 온 거야.


콩아, 네가 앉아 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걸... 나는 이제야 생각해본다.

그냥 네가 잘 먹고 잘 노니까.. 아무것도 몰랐어.

우리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란 걸.. 의심하지 않았어.

이제 난 어떡하지..

옥수수가 너를 잃고 무섭고 외로워하는 게 안쓰러워서, 그런 옥수수에게 내가 가진 바람은 그저 잘 놀고 건강하게 살아주길 바라는 것처럼.. 콩이 네 몫까지.. 그래서 나도 기운 내려고 하는데 힘들다..


옥수수는 어제저녁부터 내내 내 옆에 있었어. 그러다 너를 찾으려는지 두리번두리번거리고 냄새를 맡고... 오늘 아침엔 발길에 차일 만큼 졸졸 따라다녔어. 네가 없는 빈자리를 채울 것은 없구나. 그저 우린 너 없는 채로 사랑하며 살겠지.

네가 더는 고통받지 않는 곳에서 안식을 얻길 기도해.

나도 언젠가는 네 곁으로 갈 거니까.

지금 우리 너무 빨리 헤어졌지만, 또 보자. 콩아.

사랑해. 고마워.

내 가슴속, 하나의 별을 더 품은 난 오늘도 삶의 무게를 견딘다.



소통을 위한 책 읽기


만약의 세계[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양지연 옮김/주니어김영사]



기발한 상상력으로 일상과 상식을 뒤집어 보게 하는 재주꾼 요시타케 신스케의 최근작이다.


이 책은, 어제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있던 소중한 무엇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출발한다.


사라진 소중한 무엇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작가는 그걸 '만약의 세계'로 설정한다.


네가 아무리 해도
할 수 없었던 일,
늘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
변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

이젠 네 눈앞에 없어서
'만약 그때....'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런 모든 것이
만약의 세계에 모여 있어.


그리고 만약의 세계는,

매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상실의 아픔을, 덤덤하게 설명하는데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 에필로그


콩이는 아침에 내가 준 간식을 쪽쪽 핥아먹고, 흔들리는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여느 때처럼 내 출근하는 모습을 콩이와 옥수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날, 콩이는 내가 아끼고 자신이 애용하던 빈백에서 우리 곁을 떠났다. 퇴근 후 딱딱해진 콩이를 만지는 순간... 갑작스럽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왜.. 왜.....


옥수수도 콩이의 부재를 안다. 같이 놀던 아이가 없다. 이리저리 사방을 살피며 다닌다. 평소의 울음과 다른 울음소리를 낸다.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닌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문을 닫을 수가 없다.


부재, 상실감, 슬픔, 허무, 고통...

시간이 흐르면 이 모든 것이 엷어질 걸 안다. 하지만, 아니 그래서 난 콩이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더 많이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 무슨 인연으로 얼떨결에 다시 돌아와 그렇게 빨리 떠나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아이도 자신이 이 세상이 왔다 갔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랬던 걸까.

옥수수와 난, 콩이의 부재 속에 전보다 더 애틋하게 서로를 위로한다.


"콩이는 잘 있어. 내 가슴속에 네 가슴속에 언제나 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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