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해 May 29. 2020

쓰가루 백 년 식당의 사람들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쓰가루 메밀국수는 우선 메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반죽을 한다. 그걸 주먹 크기로 둥글게 빚어 하룻밤에서 이틀 밤 정도 우물물에 담가 둔다. 물에서 꺼낸 반죽에 콩즙과 콩가루를 섞어서 얇게 펴고 자른다. 그 면을 삶아 식힌 다음 1인분씩 사리로 만들어 두었다가 국물에 말아먹는다. 국물을 때에는 구워 말린 정어리를 넣고 끓이는데 잡맛이 없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쓰가루 백 년 식당의 1대 오모리 겐지가 노점상을 거쳐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부터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쓰가루 메밀국수였다. 국물을 내는 것은 아내의 역할이었고 면을 뽑는 것은 남편이 해야 할 일이었다. 오모리 겐지의 아내 오모리 도요가 토방의 큼직한 아궁이 앞에 서서 구워 말린 정어리를 넣고 국물을 내고 있다. 새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쇠 가마 안을 들여다보니 연한 조청 빛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다. 불이 조금 센듯하여 옆에 있던 부지깽이를 손에 들고 쭈그리고 앉는다. 아궁이 속으로 부지깽이를 쑤셔 넣고 겹겹이 쌓인 장작더미를 무너뜨린다. 미세한 불꽃이 탁 탁 탁하고 튀면서 성대하게 흔들리던 불길이 반 정도 크기로 줄었다. 얼마 후 가마 속을 들여다보니 국물은 말간 액체가 되어 아지랑이처럼 흔들린다. 그 국물은 마음이 따스해지고 편안해지는 맛이다. 그들은 먹는 사람의 마음이 따스해지는 맛, 그 맛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대 오모리 겐지에게는 오른쪽 발가락이 없었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친구들에게 놀림받았던 그를 그의 어머니가 따뜻이 감싸주었고 메밀국수 노점상을 하던 그에게 구워 말린 정어리를 팔러 다니던 아가씨 도요가 발가락 없는 발을 감쌀 수 있는 수 놓인 삼베 다섯 장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그의 마음까지 감싸 안게 된다.

 2대째에 해당하는 오모리는 늘 방탕에 빠져 지내는 사람이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단골손님과 싸움을 하고, 돈도 없으면서 첩을 들이고, 노름을 하다가 거액의 빚을 지기도 했다. 그 탓에 3대인 오모리 데쓰오는 어릴 때부터 가게 일을 도와야 했다. 이제 그도 나이가 들어가고 오늘의 국물을 접시에 담아가지고 맛을 보라고 데쓰오 앞에 내미는 그의 아내 아키코의 등이 왠지 예전보다 더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항상 그의 마음속에는 ‘맛을 지켜야 한다. 손님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 말을 따랐기 때문에 식당이 크게 번창하지는 않아도 작게나마 명맥을 유지해왔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올해에는 ‘창업 100주년’이라는 큰 획을 긋게 되었다. 그는 멀리 도쿄에 나가서 일하고 있는 아들 오모리 요이치를 생각하며 하늘을 쳐다본다. 도쿄의 하늘도 이렇게 맑을까? 자신을 닮아 내성적인 요이치의 수줍은 미소가 떠오른다.


 오모리 요이치는 도쿄의 피에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 일을 물려받을 테니 이 식당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리라 예상했었지만 그때 쓰가루 국수를 뽑던 아버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려받고 싶으면 다른 가게에서 몇 년 배우고 오라’고 말한다.

 그래서 도쿄의 어느 중화요리점에서 일을 배우기로 했지만 아버지의 가게를 무시하는 주방장과의 갈등으로 그만두고 광고회사로 옮겨 일하다가 과도한 업무로 불안신경증에 걸려 사표를 내게 된다. 현재 28세, 직원이 3명인 이벤트 회사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특기는 풍선아트를 하는 피에로의 일이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다. 도쿄의 싸구려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고, 애인은 없고, 돈도 별로 없는 청년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동향이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쓰쓰이 나나미를 만나는 행운이 찾아온다. 그 둘은 타향에서 같은 고향사람이라는 그 끈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달콤 쌉싸름한 연애를 시작한다.

 어느 날 아버지가 배달을 하다가 다쳤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을 찾게 된 요이치는 자신의 꿈이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아 일본 제일의 식당으로 키우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쓰가루는 일본 아오모리 현 서부를 가리키는 지역 호칭이다. ‘백 년 식당’이라는 단어는 아오모리 현이 3세대, 70년 이상 계승되어온 대중식당에게 내린 호칭이다. ‘원조’라는 말이 붙으면 전통의 맛을 오래 지켜온 식당의 이미지를 떠올리듯, ‘백 년 식당’이라는 이름에서도 역사를 통해 성숙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은 4대째 주인이 되려는 꿈을 꾸고 있는 오모리 요이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벚꽃이 피고 지기를 100번 반복하는 동안, 1대 겐지에서 4대 요이치로에게로 이어진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어지는 따뜻한 마음이다.


 콩가루를 섞어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 쓰가루 메밀국수 면의 미묘한 단맛 같은 것이요, 삶아서 말린 일반 정어리보다 값이 비싸지만 구워 말린 정어리를 사서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끓여내는 쓰가루 메밀국수의 담백한 국물 맛 같은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어떤 것이 옳은 결정이요, 좋은 선택이 될지 망설여지기도 하고 어떤 삶이 옳은지 또 어떤 삶이 그른지 잘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쓰가루 메밀국수의 국물을 우려내는 정성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고 기다려 주면서 한 걸음씩 걸어 나간다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 기다리는 일이며, 따뜻한 마음을 건네주는 일이다.


 저자인 모리사와 아키오가 전하고자 하는 잔잔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벚꽃터널과 연못과 달콤하지만 약간은 숨 막히는 고향냄새 같은 것을 통해 소박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세의 뒷골목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