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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May 22. 2020

중세의 뒷골목 풍경

마녀사냥에 한 번 걸려들면 대부분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중세의 뒷골목 풍경⟫이라니 한 번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쓴 작가 양태자는 독일에서 비교종교학과 비교문화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중세 유럽 천 년간(500년~1500년) 그리스도교가 사람들의 삶, 문화, 종교, 정치 등 모든 분야를 지배했던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작가는 신학의 입장이 아니라 비교종교학을 연구한 학자로서 종교학의 잣대로 중세 비주류 인생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려 했다는 것을 서문에 밝히고 있다.


  중세 유럽은 극심한 빈부격차로 거리에 거지들이 넘쳐났다. 실업자, 직장을 잃은 하녀, 장애인, 나병환자 등이었다. 청빈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종교적 거지도 있었다. 몇몇 도시에서는 거지들이 동맹을 결성해서 외부에서 온 거지들을 몰아냈다. 15세기 이후 도시는 거지들에게 거지 증서를 부여해서 증서를 가진 거지들만이 허락된 장소에서 구걸을 하게 했다.

 그런데 중세의 해석이 재미있다. 부자들은 거지들이 있기에 자선(慈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거지 덕분에 천국에 갈 사후세계를 준비할 수 있으니 부자가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받아먹는 쪽 역시 기부를 한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신이 갚아줄 것이다”라는 인사로 보답을 했다. 13세기 교회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람 세상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죗값을 사하는 방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선이라고 했다.


 유대인에게 부정적인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메시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세월 동안 그리스도 교도는 유대인을 모함하고 박해를 가했다. 14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유대인을 강제적으로 특정 장소에 모여 살게 법으로 정했는데 바로 ‘게토’이다. ‘게토’ 밖으로 나오면 유대인은 특별한 옷이나 표징으로 자신이 유대인임을 표시해야 했다.

 유럽인이 유대인에게 붙여준 명칭은 고약했다. ‘우물에 독약 넣은 이’ ‘신을 살해한 자’ ‘종교의식 살인자’ ‘고리대금 업자’ 등이다. ‘우물에 독약 넣은 이’라는 별칭은 14세기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했을 때 붙여졌으며 ‘종교의식  살인자’라는 이름은 유대인의 살인 종교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핍박과 수모를 당했던 반작용 때문인지 유대인 역시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12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예수를 모독하려는 의도로 축성된 성체를 훔쳐서 살인 종교의식에 사용하기도 하고 그리스도교 어린이를 유괴하여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아이의 피를 짜내어 종교축제와 의약용으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이 문제를 일으키자 전면적인 유대인 학살이 시도되었다. 유대인에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든지 아니면 죽음을 선택하든지 양자택일 하라고 엄포를 놓았는데 대부분의 유대인이 의연하게 죽음을 선택했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20세기 인류사에 또 하나의 비극적인 자취를 남겼다. 바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다. 이 민족적이고 혈통적인 악감정이 생긴 근원은 종교와 종교 간의 반목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의 뒷골목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느 시대에나 동성애자는 있어왔는데 중세시대에 동성애자는 발각되면 대부분 불에 태워지는 중형을 받았다. 중세 후기로 갈수록 처벌은 더욱 엄해져서 동성애자를 새장이나 우리에 가두어 굶겨죽이거나 공공장소에서 거세하기도 하고 사지를 자르기도 했다.

 중세 후기 유럽의 성관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여성의 집’이다. 시에서 직접 매춘부를 고용하여 돈을 받고 성을 제공했던 곳인데 매출의 20퍼센트는 수도자들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또 중세 유럽의 공중목욕탕에서는 공공연히 매춘이 자행되고 치료 목욕사가 목욕을 도와주고 몸을 치료해주기도 했다. 14세기 초부터는 결혼식 피로연도 목욕탕에서 열렸다. 음식을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도 모자라서 여자와 음악까지 등장시켜서 혼탕을 즐기면서 문란함이 더해갔다. 그러다가 매독과 페스트, 사혈을 통한 전염병이 급속하게 번지면서 공중목욕탕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몇백 년 전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다. 페스트 병균은 쥐들이 주로 옮겼는데 확산을 막기 어려웠다. 1347년 ~ 1353년에 창궐했던 페스트 때문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신의 저주 때문에 전염병이 창궐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에게 회개하고 윤리적인 생활을 하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문란한 생활을 금지하기도 했다.

 

 중세 유럽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다. 당시 교회는 교리에 위배되는 악마적인 세력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교리에 조금만 어긋나는 발언을 해도 마녀로 몰아세웠고 즉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녀들은 마귀와 소통하는 존재들이고 그리스도교의 신을 모독하는 죄인으로 간주했다. 그리스도교 수장들은 무조건 자기들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과 말을 하면 마녀로 몰아붙여 무자비한 탄압에 들어갔다. 몇 백 년간 지속된 가혹한 마녀사냥으로 전 유럽에서 5만 ~ 6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종교적인 숙청으로 시작한 마녀 사냥이 나중에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질되었다. 가족, 친척, 이웃끼리 조금만 화가 나도 서로 상대를 고발하는 무기로 마녀사냥을 이용했다. 종교적 이유든 개인적 감정이든 간에 마녀사냥에 한 번 걸려들면 대부분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마녀 혐의자를 꽁꽁 묶어 물에 넣고는 마녀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시험을 했는데 이때 몸이 물에 뜨면 마녀라는 증거가 되고 가라앉으면 물에 빠져 죽게 되는 것이니 물에 떠도 가라앉아도 어차피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중세인들은 그들만의 교리에 충실하면서 자기들의 신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 보이지 않는 신에게 충성을 바치기 위해서 살아있는 생명을 쉽게 죽였다.


 중세의 뒷골목 이야기를 자료에 근거하여 소개해주고 있어서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그런데 당시의 교회가 이슬람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종교적 목적으로 일으킨 십자군 원정(1096년~1204년) 이야기에 이르면 아! 차라리 종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외친 혹자의 절규에 공감하게 된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순수함과 열정은 다 어디 가고 교회가 그렇게 권력화, 세속화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중세시대는 종교 -그리스도교-의 힘이 강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종교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에 이르러 당시 사제였던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이 이해가 가고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그 종교도 세월이 흐르고 힘이 강해지면 또다시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기가 믿는 종교가 어떤 것이든 그 종교 때문에 인륜을 저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며 그런 일을 조장하는 종교라면 정말 참된 종교인지 되물어 봐야 할 일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신을 섬기는 일과 사람을 섬기는 일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신학자도 종교학자도 아닌 나는 책을 덮으면서 혼자 중얼거려본다.


‘신을 믿고 섬기는 일과 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같은 것이며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같은 것이라고’

 

사람이 답이다! 우리가 종교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고 사람답게 잘 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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