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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May 05. 2020

결혼의 문화사

아직도 아버지의 손을잡고  신부입장을 하시나요?


  결혼이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면 누구나 결혼에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혼식이 끝나면 실질적인 문제가 슬며시 수면으로 떠오른다. 혼인관계에서 주도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여야 할 때인 것이다.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반려견 한 마리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독일 작가 알렉산드라 블레이어가 쓴 책이다. <결혼의 문화사>라는 이 책에서는 유럽, 그중에서도 서유럽의 결혼 양식과 형태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의 관점에서 본 결혼의 법적 형태는 여러 세기에 걸쳐 개선되었다. 초기에 여성은 일명 부권혼을 통해 아버지에게서 미래의 남편에게로 인계되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의 혼인은 성경의 창세기에서 시작된다. 창세기에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장 24절)”라고 적혀 있다. 고대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최초로 결혼을 도입하셨노라고 주장했다. 교회의 7 성사에 혼인성사를 포함시킴으로써 결혼의 유효성과 취소 불가를 인정해야만 했다. 혼인이 지닌 성사의 의미를 부정한 첫 번째 가톨릭 국가는 프랑스였다. 1792년 프랑스혁명 당시 법적 혼인제도가 도입되었고, 시 공무원 앞에서 증인을 세우고 결혼식을 올렸다.


 내게 꼭 맞는 짝을 찾는 비법은 없을까.

 결혼은 단순히 두 사람만의 결합에서 끝나지 않고 두 가족이 서로 얽히는 문제다. 가문은 경제적, 사회적 위치의 ‘몰락’을 피해 좀 더 윤택해지거나 최소한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유럽에서 큰 논란이 일었던 ‘강제결혼’과 ‘명예살인’이 21세기에도 등장했고, 이렇듯 자식의 희망과 기대는 아랑곳하지 않은 정략결혼은 거의 모든 사회계층에 존재했다.

 결혼을 결심한 후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다면 앞으로 겪을 일을 제대로 계산해봐야 한다. 20세기와 21세기에 들어서자 부모의 의사와는 별개로 당사자가 배우자를 선택했다. 인생을 함께할 배필을 결정하기 전에 우선 관계를 형성하는 교제 과정을 거치는 게 매우 보편화되었다.


 그렇다면 배우자 선택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근대 초기 가톨릭 및 개신교 신학자들은 신앙이 다른 신랑 신부의 결혼을 반대했다. 종교문제보다 복잡한 건 근친상간으로, 교회법은 사촌 사이인 남녀의 결혼을 금지했다. 로마에는 친인척 사이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다. 하지만 서유럽에서는 재산과 가문 내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친인척끼리 결혼하는 풍습이 매우 보편적이었다.

 돈이냐, 사랑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돈 없이 사랑으로 결혼한 사람은 밤마다 행복하겠지만 눈을 뜨는 아침에는 참담하다.”라는 격언이 있다. 여기에서 자산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적 자산(재산과 수입), 문화적 자산(교육, 문화재를 다루는 수준), 사회적 자산(집안, 사회적 인맥)이 핵심 요건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신랑 신부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재산, 지위 등 후세에 대물림할 수 있는 자산 정보를 확보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에서 지참금 없는 여성이 남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으며, 지참금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생활하는 데 할당된 여성의 몫이자 남편 재산에 보탬이 되는 것으로 대개 유동성 재화와 현금이었다.

 구혼 광를 최초로 도입한 나라는 영국이다.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30세의 신사가 3,000파운드 또는 그에 준하는 재산을 보유한 숙녀의 배필이 되고자 한다.”는 식으로 상대의 재산 상태를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구혼 광고들이 많았다.

 돈은 돈과, 토지는 토지와 결혼한다. 사랑은 언젠가 시들어버리지만 토지는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규모가 아무리 작더라도 재산이 있는 사람은 그에 준하는 가치를 가진 배우자를 찾는다는 규칙이 구혼 광고에 반영되었다.  돈 다음으로는 주로 사랑이나, 호의가 순위에 올랐다. 돈보다는 낭만적인 사랑에 목소리를 높였던 고상한 시민계급들도 실제로 배우자를 선택할 시기가 가까워지면 대다수가 경제적, 사회적 관점에 따라 결정했다.


 그렇다면 결혼의 현실은 어떤 것일까.

 결혼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 관점에서 하나의 공동체인 부부가 된다. 결혼에서 남편과 아내의 위치를 묻는다면, 여러 시대의 신학자와 철학자가 그 답을 찾고자 노력했는데 대다수가 아내의 입지를 남편 아래로 두었다. 1958년 독일 연방 공화국에서는 혼인법의 평등원칙이 도입되었다. 집안일에 대해서는 1900년 독일 국민 법전에는 결혼한 여성은 남편을 돌보고 살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가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한 명의 월급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가 버거워졌다. 두 사람이 모두 일한다면 집안일은 어떻게 나눠야 할까? 199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의 헬가 콘라트 장관은 “반-반”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를 촉구하는 정치적 캠페인을 시작했다. 현재의 모습은 어떠한가? 학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가사노동 대부분을 여성이 맡고 있으며, 남성과 비교했을 때 평균 두 배 이상의 시간을 가사노동에 할당한다고 보고했다.


 결혼은 서로 다른 두 개인이 함께 인생을 공유하는 것으로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분쟁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가장 껄끄러운 분쟁은 무엇일까? 대개 불균등하게 부여된 경제적 자산에 관한 재량권이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또 하나의 중요한 분쟁거리는 가정폭력이다. 오랫동안 가장은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부인, 자식, 하인 등 가족의 일원에 대한 신체적 무력행사를 포괄하는 체벌권을 가졌다. 20세기 후반 가정폭력은 공공사회의 이슈로 떠올랐으며, 현재 학문적 측면에서도 하나의 주제로 다뤄진다.


 결혼생활에서 쾌락과 좌절을 가져다주는 성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결혼 전과 후의 이중 잣대가 시종일관 등장한다. 남성은 식을 올리기 전에 창녀 등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성과 성경험을 쌓으려는 반면 여성은 숫처녀인 상태로 결혼한다. 자식이 아버지보다 이웃 또는 남편의 친한 친구와 닮는 불상사가 없도록 여성의 정절을 바라는 것이다. 근대 초기부터 대다수 유럽 국가에서는 결혼과 성에 관련된 형벌체계가 늘어났다. 간음 외에도 매음 및 혼외정사가 단속 대상이었다. “간음하지 말라”는 그리스도교의 10 계명 중 하나다. 부정행위를 저지른다면 “절대 걸리지 말라”는 제11 계명을 꼭 염두에 둬야 했다.

 교회는 성관계 시 그 ‘상대’는 물론 ‘방법’마저도 규제하려 했다. 교회의 주장에 따르면 성행위는 무엇보다 후세를 얻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최대한 ‘정상적인’ 방식으로 치러야 한다고 했다. 명망 있는 가문의 규수라면 마땅히 성욕이 없어야 하고 부부라도 성관계를 즐기려는 생각을 버려야 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려 종교개혁자들은 결혼한 부부가 서로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20세기 초에는 그 방법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새로운 개념의 카운슬링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네덜란드 출신의 산부인과 원장 테오도르 헨드릭은⟪완전한 결혼⟫에서 남성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체위 등 적절한 성 기교를 연마하여 아내를 유혹하고, 그로써 자신과 아내 모두를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바티칸에서는 이 책을 금서목록에 포함시켰다.


 결혼의 끝은 어디인지 생각해보자.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에서는 이혼이 다반사였기에 사회적으로 크게 배척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이혼을 찬성하지 않았다. 교회법에 따른 이혼 규정의 핵심은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에 있고 오로지 죽음으로만 결혼을 끝낼 수 있다.


 프랑스혁명이 진행되던 1792년 법률상의 혼인제도에 이혼이 추가되었다. 1820년대부터는 이혼 신청자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더러는 배우자에게서 벗어나고자 잔혹한 방법으로 남편의 죽음을 도모하는 아내, 아내의 죽음을 도모하는 남편의 수는 가늠조차 어려울 정도다. 독살은 주로 여성의 전유물로 묘사되었다. 주로 식사 준비를 담당하는 여성은 주방과 식품 저장실에 출입하기 쉬웠으므로 독살은 식은 죽 먹기였다. 팬케이크는 비소를 섞기 좋아서 독살에 가장 많이 활용된 음식이다. 팬케이크 접시를 나를 때 접시가 바뀌지 않도록 신중해야 했다. 이제 식사시간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여보!  등골이 오싹해지는 남성들이 있을 것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볼 때 결혼에 기한은 없다. 현재 이혼율이 매우 높지만 그건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과거에도 그랬다. 또 재혼율도 높다. 그 말은 많은 사람이 배우자의 사망 또는 결혼의 실패에도 과감하게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는 뜻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회의 발전에 맞춰 계속해서 진화한다. 시대의 사회상이 반영되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할 것이다.


 이 책을 읽다가 '아차'하고 놀란 사실이 하나 있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가 신부인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서 사위가 될 신랑에게 딸을 건네주는 것은 부권혼의 상징이다. 조선시대에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삼종지도(三從之道)와 다를 것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것은 여자의 평생을 가족인 남성에게 종속되도록 만들었던 유교 사상의 잔재가 아닌가.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면서 별생각 없이 오늘날까지도 결혼식장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신부들이 있다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주도적으로 결혼에 임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다.

 

 당당하게 혼자 걸어서 입장하라.


 그리고 결혼의 그 끝이 어디쯤이 되든지 씩씩하게 싸워나가라. 결혼의 어느 지점이든지 희망의 싹은 자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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