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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Apr 21. 2020

아침식사의 문화사

아침식사로는 빵이 좋을까요?  죽이 좋을까요?


 미국 오리건 주에 살고 있는 음식 전문 저술가 헤더 안트 앤더슨(Heather Arndt Anderson)이 쓴 책이다. 서양의 아침식사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아침식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breakfast는 말 그대로 밤새 계속하던 “단식fast을 깨다break'라는 의미이다.

 다수의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고대 로마인들은 하루에 세 차례의 식사와 오후에 한 차례의 간식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남긴 글을 보면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침식사 준비가 보편적인 아침 일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침식사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종교다. 중세 시대에 왕족과 그 측근들은 다른 일은 아예 제쳐 두고 온종일 식탁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보낼 수 있었다. 사회 지도층이 먹는 일에 엄청난 시간을 허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침식사는 가장 먼저 없애야 할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중세의 도덕론자들은 가벼운 점심과 그보다 조금 더 푸짐한 저녁, 이렇게 두 끼면 하루 식사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아침식사는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이었다. 아침식사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는 식사에 으레 곁들여지는 맥주나 포도주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귀족들의 아침식사에는 맥주나 포도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고 한다.

 최소한 일부 귀족들은 아침식사를 금지하는 사회 분위기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먹었던 듯하다. 에드워드 4세의 배우자인 여왕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아침 식사로 흰 빵, 맥주, 포도주, 뼈가 붙은 양고기나 소고기를 넣고 끓인 수프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신중한 엘리자베스 여왕마저 아침식사에 맥주와 포도주를 포함시켰다니, 중세의 애주가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셔 댔을 지 궁금하다고 작가는 적고 있다. 후에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아침마다 술 대신 커피와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이는 교회가 아침식사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도덕적 근거가 되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영국과 미국 모두 아침식사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상류층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양고기, 베이컨, 달걀, 옥수수빵, 머핀, 파이 등으로 푸짐한 식사를 즐겼다. 18세기 중반에는 아침식사의 인기가 더욱 높아져 새로 짓는 집에 아침식사를 위한 전용 공간까지 마련되었는데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신사들은 조찬 모임에서 커피를 마시며 정치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유한 영국 가정의 아침식사는 걸쭉한 귀리죽으로 시작해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한 베이컨과 달걀 요리로 이어졌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티’(실론차, 기문차, 아삼차를 섞어 만든 영국 티)에 이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가 탄생했다.

 클린 리빙 운동이 끝난 19세기 후반, 미국인의 아침식사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은 시리얼이 첫선을 보였다. 건강증진센터 원장이었던 켈로그 형제가 우연한 기회에 플레이크 형태의 시리얼을 만들게 되었고, 그 건강증진센터에 견학 갔던 포스트가 아이디어를 훔쳐서 시리얼 제조회사를 만들었는데 두 회사는 서로 경쟁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수 십 년 뒤, 여성들이 편리함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보존제 투성이인 편의식품에 의존하면서 공중 보건이 약화되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이 아침식사로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알아보자.

 우선 밥과 죽과 빵을 들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먹었던 음식이 있다면, 단연코 ‘죽’이다. 죽을 꼭 아침에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죽은 대개 아침식사로 나온다. 북미와 북유럽에서 아침식사로 먹는 죽은 대부분 귀리나 옥수수, 밀로 끓인다. 한편 동유럽 사람들은 ‘카샤’라는 메밀죽을 즐겨 먹는다. 죽이라고 하면 대개 부드럽게 끓인 곡물을 연상하지만 콩으로도 죽을 끓일 수 있다. 성경 창세기에는 오전 일을 마치고 돌아온 허기진 에서가 렌틸콩 죽 한 그릇을 얻어먹는 대신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권리를 모두 넘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동아시아에서는 쌀과 수수로 끓인 ‘콘지’라는 죽을 아침식사 때 많이 먹는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간은 최소 1만 2천 년 전 부터 빵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빵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됐다고 할 수 있다. 프렌치토스트, 롤과 머핀, 잉글리시 머핀, 베이글, 비스킷빵과 스콘, 샌드위치, 팬케이크와 와플, 아침용 케이크, 페이스트리, 도넛 등 아침식사로 먹는 빵의 종류는 많고 또 여러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아침을 가볍게 열어주는 유제품으로는 소화와 장에 효과가 있다는 요구르트와 고기 없이 경제적으로 허기를 채워주기에 적합한 치즈가 있다.


 아침식사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달걀이다. 조류의 알은 선사시대 이래 인류의 주요한 에너지원이었다. 반숙으로 삶은 달걀을 토스트와 곁들여 먹는데 영국에서는 ‘에그 솔져’라고 부른다. 달걀의 변신은 무한하다. 수란에 진한 커스터드 소스를 곁들인 ‘에그 베네딕트’, 소금에 절인 알, 구운 달걀, 푼 달걀(오믈렛, 키슈, 스크렘블 에그)가 있고 달걀 프라이는 한 쪽 면만 익힌 것을 ‘서니 사이드 업’이라고 부른다.

 고기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아침에 먹어도 맛있다. 역사상 고기는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식재료였다. 돼지고기로 만든 베이컨과 햄, 소시지를 아침으로 많이 먹었다. 육체노동자들은 아침부터 치킨 프라이드 스테이크에 크림 그레이비소스를 곁들인 든든한 식사를 했다. 사순절 같은 가톨릭의 금육제 기간에는 베이컨 대신 훈제 청어를 먹었다. 동물의 내장 요리도 있다. 양이나 콩팥 구이는 1912년 타이타닉 호의 일등실 아침식사 메뉴였고, 소의 위장인 양으로 끓인 수프, ‘메누도’는 수 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멕시코의 전통 농가 음식이다. ‘브론’이라 불리는 돼지 머릿고기도 먹었다.

 ‘치킨 수프’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영혼을 울리는 따뜻한 수프도 아침식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는 따뜻한 수프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에서는 오래전부터 양고기 스튜를 아침식사로 먹었다. 크레올 해산물 검보 수프는 미국 뉴올리언즈를 대표하는 걸쭉한 스튜다.


 아침식사는 과일과 야채를 포함해서 먹는데 이 책에서는 한국인들의 아침식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아침에 쌀밥과 함께 가지나물, 미역국, 우엉, 장아찌 같은 채소 반찬을 먹는다. 특히 배추, 파, 마늘을 고춧가루에 버무려 발효시킨 김치는 역사가 기원전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이다.’ 그러면서 김치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눈에는 도저히 김치로 보이지 않는 사진이라서 잘 익은 우리 집 김장김치 한보시기 보내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미국의 아침식사에 음료로는 커피, 주스, 우유 등을 주로 마셨다.

 미국에서도 현대화된 주방은 주부들의 로망이었다. 전기토스터기는 식빵을 업그레이드 시켰고 커피메이커의 등장으로 순도 백 프로의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또 시리얼의 등장으로 아이들도 스스로 아침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성과 음식은 오래전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930년대 영화에서부터 일찌감치 등장한 남녀의 아침식사 장면은 두 사람이 전날 밤을 함께 보냈다는 은유적 표현이었다. 아침을 같이 먹자는 요청은 밤을 함께 보내자는 수줍은 유혹이다. 침실에 함께 들어갔지만 아침을 먹고 가지 않았다면, 그날 밤의 관계가 썩 인상적이지 않았거나 그 일로 감정적 친밀감까지 쌓으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점점 간편한 방식으로 변해가는(예, 드라이브 스루 식당에가서 산 음식을 이동하면서 먹어치우기도 한다) 아침식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침을 거르는 사람은 폭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연방정부 청사를 폭파시켜 168명을 사망케 한 티모시 맥베이는 그날 아침 차가운 스파게티를 먹었다고 한다. 그가 그날 아침 갓 구운 팬케이크와 따뜻한 오믈렛을 먹었더라면, 범행을 저지르기 전 다시 한 번 고민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아침식사의 미래가 그렇게 암울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침식사가 서둘러 먹어 치우거나 건너뛰는 것이 아닌, 필수적인 식사가 된다는 중요한 예측도 있다. 전문가들의 예상에 따르면 향후 10~15년 내에 아침식사는 오늘날의 저녁식사처럼 중요한 끼니로 인식되어, 느긋하게 앉아 세 코스에 걸쳐 천천히 먹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 이 예측이 들어맞는다면 아침식사의 미래는 참으로 가슴 설레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경제가 발전하고 더 풍요로워진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너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아침을 먹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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