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의 물음표

콩나물은 항상 궁금했습니다

by 은해

콩나물은 항상 궁금했습니다.

왜 나는 검은 보자기를 머리 위에 쓰고 살아야하는지··· 정말 답답하고 지루한 날들이었습니다. 다른 채소들은 떡 하니 김 서방네 이 서방네 밭 한 자락씩 차지하고 앉아서 따뜻한 햇살 받으며 자라고 있는데 왜 나만 유독 예쁘지도 않고 이상하게 생긴 시루 안에서 빨강도 아니고 노랑도 아닌 하필이면 그 시커먼 천을 뒤집어쓰고 살아야 하는지 마음이 아파오곤 했습니다. 주인 집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오이나 가지는 얼마나 좋을까. 환한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검은 천 아래에서 기약 없이 시시때때로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견디는 나 콩나물의 심정을 알기나 하랴 싶어서 그들에게 괜한 심술이 나곤 했습니다. 왜 나만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자라도록 하는지 주인이 원망스러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콩나물은 검은 보자기 아래의 그 어둠이 너무나 싫었고 그 답답함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콩나물이 언제까지 그 검은 천을 쓰고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인정머리 없는 주인은 비를 맞으며 콩이 견디었을 어둠이 얼마나 깊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콩나물은 언제나 궁금했고 그래서 다 자란 콩나물은 물음표 모양이 되었나 봅니다.


콩나물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리를 합니다.

어느 날 콩나물은 그 어둠이 싫어서 자기 힘으로 검은 천을 들어 올려 보려고 안간힘을 써 봅니다. ‘으쌰으쌰’ 있는 힘을 다해서 검은 천을 밀어 올려보지만 역부족입니다. 무슨 수를 쓰든지 내 힘으로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겠다며 용을 써보지만 콩나물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비가 내릴 때면 잠시 검은 천으로부터 해방될 때가 있습니다. 아, 이제 살겠다 싶은데 야속한 주인은 다시 검은 천을 잘 덮어 놓고는 자기 볼일로 바빠서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립니다. 콩나물은 주인을 불렀습니다. 여보세요. 아주머니. 여기 좀 보세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이제 그만 이 검은 천을 걷어 주세요. 이 어둠이 싫어요.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다고요.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불러 보았지만 주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는 콩나물의 괴로움쯤이야 안중에도 없었던 것일까요. 그래. 역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지. 힘을 길러야해. 콩나물은 언젠가는 이 좁은 시루와 어두운 공간에서 해방되리라 다짐하며 꿋꿋이 견디어봅니다. 어? 그런데 어느 날 자기 몸을 살펴보니 다리가 조금 길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키가 더 커졌으니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몰라. 그 때부터 콩나물은 기가 막히게 좋은 계책이라도 찾아낼 요량으로 온 종일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온갖 궁리를 다 해봅니다.

그러다가 콩나물은 고개가 갸우뚱한 물음표 모양이 되었나 봅니다.


콩나물은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어느 날부터 콩나물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은 왜 나만 유독 거무스름한 시루 안에서 검은 천을 씌워 놓고 키우는 것인지 야속하기까지 했습니다. 더러는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며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슬픔이 온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주인이 내가 미워서 그러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인은 때가 되면 잠시 검은 천을 걷고 내게 물을 주고 다시 햇빛이 들어가지 않게 검은 천으로 시루를 잘 덮어주는 것을 보면 내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더러는 물을 다 준 다음 지난 번 물 줄 때보다 얼마큼은 자라 있는 나 콩나물이 기특해서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줄 때도 있었는걸요. 그런 손길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주인은 나를 좋아하나 봅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몇 날 며칠을 울고 나서야 주인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콩나물은 주인이 잠들기 전에 나에게 물을 주고 검은 천을 덮어주면서 혼잣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콩나물은 햇빛을 보면 안 되지. 이렇게 덮어 두어야 잘 자라지. 오늘 밤에도 쑥쑥 자라거라.’ 아, 주인은 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검은 천을 덮어 주었던 것입니다. 오랜 고통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주인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콩나물은 주인이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콩나물은 인사를 하고 있는 물음표 모양이 되었나 봅니다.


콩나물은 이제야 감사함을 알고 고개를 숙입니다.

콩나물에게는 견디기 어려웠던 긴 긴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콩나물은 그 힘든 어둠의 시간에도 큰 의미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단단하고 조그마한 콩이었던 내가 이제는 늘씬한 다리를 가진 야들야들 부드러운 콩나물이 되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검은 보자기 아래에서 보낸 그 힘겨운 시간들이 헛되지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검은 천 아래에서의 그 어두운 모든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하기위한 주인의 배려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단단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무나 감자에게도 자기만의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자라는 오이나 가지에게도 나름의 곤란함이 있었으리라는 것도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은 다 저마다의 고통과 설움이 있다는 것을 어둠속에서 수 없이 많은 눈물을 흘린 후에야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나만 서럽고 아팠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다른 존재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아파하는 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예쁜 마음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콩나물은 밥상 위에서 감자나 오이를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나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거친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고 누군가의 고단한 어깨를 힘껏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콩나물은 검은 보자기 아래에서 삶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배우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주인에 대한 감사함으로 머리를 숙입니다.

그러다 보니 콩나물은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있는 물음표 모양이 되었나봅니다.



◎제목 ‘콩나물의 물음표’는 김승희(1952~)의 시<콩나물의 물음표>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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