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해 Jul 31. 2020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삶이 삶은 나물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작가 김서령은 2018년 10월에 우리 곁을 떠났다.

  방사능 치료 때문에 깎았던 당신의 빡빡머리조차 좋아하고 사랑했었다는 이 책을 엮은이의 말로 미루어 그녀는 상당한 시간 동안 투병했었던 것 같다. 그녀는 경북 안동 출신의 칼럼니스트로 인터뷰 칼럼을 주로 써왔다. 김서령의 글은 따뜻하다는 평을 받아왔는데 그녀의 장기라는 인터뷰 글에서 유독 그 따뜻함이 두드러졌다. 따뜻한 눈으로 일상의 결과 사람의 속내를 길어내 맞춤 맞은 말로 그려내는 솜씨가 뛰어났던 작가였다.

 

 안동 지방 양반가의 내실 풍속과 사랑채 역사를,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와 감정 세계를 속속들이 알고 손에 잡힐 듯 묘사하는 작가를 이제 우리 문학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엮은이인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묻고 있다.     

 이 책의 부제가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라고 되어 있는데 이 책은 실은 단순한 조선 엄마의 레시피 그 이상이다. 당시 안동 지방에서 해 먹었던 음식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유교적인 색채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강한 경북 북부지방(안동, 영주, 봉화, 영양, 의성 등)에서 살았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은근하게 녹여내고 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의 실체와 본질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는 인생론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같은 지역 출신으로서 김서령의 시원스러우면서도 맛깔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릴 적 함께 살았던 할매, 할배, 아재와 아지매를 다시 만난 듯한 반가움으로 읽는 재미가 다른 독자들보다 훨씬 더 크다.     


 작가는 배추적 이야기를 하면서 ‘외로움에 사무쳐봐야 배추적의 깊은 맛을 안다.’고 말한다.

 밤이 되면 응후(작가의 아명인 듯)네 사랑으로 동네 사람들이 마실을 온다. 순자 할매, 옥자 아지매도 오고 큰으매(조모) 친구들도 끼어 앉게 된다. 그런 저녁에 큰으매가 나이 들어 이가 상한 것이 오로지 엄마의 죄라는 듯 송구스러워하며 “어매요, 배추적을 한 두레 구울까요?”한다. 그러면 한쪽에선 물을 끓여 날배추를 데치고 한쪽에서 밀가루를 후리고(개고) 또 한쪽에선 솥뚜껑에 들기름 칠할 무를 깎는다. 싸릿가지 꺾는소리가 두어 번 타닥 탁 들리고 부엌 쪽 광창이 훤하게 밝아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대나무 채반에는 김 나는 배추적이 서너 장 척척 얹혀 나온다.

 작가의 집은 밤에 부엌이 소란해도 괜찮은 해방구다. 어려운 사랑어른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집 사랑에는 아버지가 안 계시다. 엄마는 머리에 검댕이 묻은 헌 수건을 쓴 촌사람이고 아버지는 머리에 포마드가 반짝거리는 도회지 사람이다. 아버지는 아마 도회지에서 작은댁을 얻어 딴살림을 차린 것인 듯하고 작가의 아버지는 제사 때나 잠깐 들를 뿐이었고, 아버지의 아름다운 부재는 어린 응후에게도 알 수 없는 응어리가 되어 외로움을 키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겨우 여섯 살인 작가는 이미 배추적의 깊은 맛을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어머니의 마술 같던 콩가루 국수(안동국시), 애호박전과 호박잎 쌈 그리고 간장에 무치는 보들보들한 정구지(부추) 나물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얼른 시장 봐와서 해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이가 없어 입술이 복주머니 아구리처럼 합죽해진 할매들은 딱딱한 것을 씹을 수가 없어서 “내 제사상에는 호박뭉개미만 있어도 될따‘했다는 늙은 호박으로 만드는 호박뭉개미도 있다. 작가는 날콩가루를 다박다박 무쳐서 끓인 콩가루 냉잇국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그 향을 아껴 몸속에 저장해두기 위해 식구들은 일찍 불을 껐다고 말한다.

 야생 취나물 무침 이야기를 하다가 작가는 ’ 삶이 삶은 나물보다 못할리야 ‘ 있겠느냐고 항변한다. 나물을 말려 삶아서 얼려서 출발하는 차 속에 한사코 넣어주던 작가의 고모 이야기다. 남편도 없었고 자식도 없이(다만 있는 것이라곤 층층시하 시어른들과 불천위 종가의 잦고 번거로운 제사뿐이었고 남편 없는 시가에서 고모는 평생 그걸 해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이라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한 여자의 삶을 작가는 애달파한다.


 작가의 엄마가 닳은 술로 살살 긁어 만들어 주었다는 ‘명태 보푸름’의 그 개결한 맛 이야기에서는 조선 엄마 레시피의 절정을 맞는다. “살이 부서지믄 가루가 돼서 못 쓴데이, 그라믄 젓가락으로 집을 수가 없거등. 황태 살이 결대로 살살 긁혀 나와야 양반시럽데이. 보푸름 해놓은 걸 보믄 그 집 견문을 대강 알제.“ 그게 엄마의 친정인 무실 유 씨에 대한 자랑인지 시가인 내앞 김 씨에 대한 자랑인지는 끝내 아리송하지만 그 말은 실은 엄마의 아주 도도한 고백이었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견문(見聞)을 안동에선 보고 배운다고 ‘보배움’이라고 불렀다. 견문이 즉 예(禮)였고 ‘견문이 없다’라는 것은 유가에서는 파문이나 다름없었다.

 그 외에도 수수조청 고는 이야기며, 새근한 ‘증편’의 고운 자태, 순하되 슬쩍 서러운 갱미 죽 이야기 등 작가가 풀어놓은 안동 지방의 음식 에세이와 조금은 외롭기도 하고 슬쩍 서럽기도 하고 더러는 삶은 나물보다 못한 삶 이야기에 기가 막혀 삶은 나물 봉지가 잔뜩 들어있는 냉동실 문을 잡고 삶과 죽음의 어처구니없음을 생각했다는 작가의 인생론에 흠뻑 빠진다.


 평론가가 ‘한 문장이 졌다.’라고 할 만큼 뛰어난 작가이지만 같은 안동지역 출신 작가인 나로서는 몇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 책에서 사용한 안동 사투리 중에는 같은 지역 출신 독자인 내 눈에는 몇 가지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그때가 되믄 니도 이 아지매 맨치로 횃대 보에 감을 수놓아라. 어예이?” “어매요, 배추적을 한 두레 구울까요?”에서 안동 사람들은 아무도 ‘수놓아라’ 또는 ‘구울까요?’라고 하지 않는다. ‘수 나(놔)라’ ‘꾸까요?’라고 해야 정확한 안동 사투리의 구현이다.

 그리고 작가의 고모가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중마루에 가서 기침을 한 번 하고 시아버지에게 고할 때 “아벰, 점심이시더.‘라고 했다는 부분에서는 손윗사람인 시아버지에게는 ’아벰요,‘하고 부르던 것이 안동지방의 예절이었다. 시아버지에게는 ’아벰요,‘ 시어머니에게는 ’어멤요‘하고 불렀고 손 위 시숙에게는 ’아지벰요‘ 손아래 시동생에게는 ’아지벰‘하고 불렀다. 시누이는 ’엑시‘ 장가 안간 시동생은 ’대름‘이라고 불렀다.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부엌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음식에 온갖 정성을 쏟았던 안동 지방 엄마들의 음식 레시피와 삶 이야기가 묵직하다. 그 시절 그 사회가 만들어놓은 가치나 신념을 목숨처럼 지키며 살았던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처럼은 살지 마래이'하고 당부하는 어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카노 노부키의 바람난 유전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