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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Sep 11. 2020

방구석 미술관으로의 초대

누구에게나 사랑은 그렇게 사고처럼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다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제목부터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미술이라는 친구, 어떻게 만나야 친해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처음 미술을 접할 때, 보통 공부를 하기 십상입니다. 서양미술사(西洋美術史)라는 역사로 접근하거나 미학(美學)이라는 학문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죠’

 가끔 미술전시회를 다니면서 느끼는 서양미술에 대한 지식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이 책과 작가에 대해서 서문을 읽으면서 벌써 마음을 열게 된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들렸을 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라는 작은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 수 없이 많은 관람객들 사이를 비집고 까치발을 했던 생각을 하면 ‘방구석 미술관’이라니 독자로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저자는 첫 번째로 죽음 앞에 절규한 에드바르트 뭉크를 소개하고 있다.

 뭉크는 평생 죽음을 의식하고 살았다고 한다. <절규>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뭉크에게 필연적이었던 최후의 주제는 죽음이었고, 평생 절실히 죽음을 피하려 했기 때문인지 그는 81세까지 살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부터 그렸다는 <시계와 침대 사이에 있는 자화상>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그는 늙어가는 자신에게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 그 그림 속에는 노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다가올 죽음을 그저 조용히 서서 기다리고 있는 뭉크가 있고, 또 그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시계와 침대 사이에 서있다.

 그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평소 잊고 지내던 죽음을 한 번 소리 내어 불러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해설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은 언젠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만났던 미술계의 여성 혁명가라고 불리는 프리다 칼로 이야기다. 그녀의 고통은 오른발 소아마비로 시작되고 꽃다운 나이 열여덟에 프리다는 온몸이 으스러지고 골반 뼈가 세 동강이 나는 사고를 당한다. 사귀고 있던 애인까지 떠나버리고 크나큰 고통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의 순간에 프리다는 다시 태어난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프리다 스스로가 인생의 두 번째 사고라고 표현했던 당시 멕시코의 국민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난다. 이미 고통의 여왕으로 등극한 21세 프리다 칼로와 취미가 불륜인 국민화가 43세 디에고 리베라의 만남은 그녀의 표현대로 사고였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그렇게 사고처럼 우연히(accidently) 다가오는 것이다.

 그녀는 두 번의 결혼 전력과 네 명의 자식이 딸린 디에고와 결혼 후, 자신의 많은 것을 바꾸며 노력하지만 두 번의 유산으로 엄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고 그런 고통은 <떠 있는 침대>라는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바람 외길 인생 40년인 디에고는 프리다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도 불륜을 저지른다. <단지 몇 번 찔렸을 뿐>이라는 작품에는 그런 그녀의 아픔이 그대로 묻어있다.

 디에고에 대한 복수심으로 프리다 역시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등 다른 남성들과 사랑하고 불륜을 저지르지만 그녀의 가장 큰 복수는 미술 분야에서 디에고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예술가를 예술로 넘어서는 것만큼 큰 복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사랑한 영혼의 화가, 하지만 생전에 단 한 작품밖에 팔지 못했다는 빈센트 반 고흐는 노란색에 푹 빠진 화가였다. 그의 작품 <해바라기>나 <노란 집> <프로방스의 건초더미>등을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온 후 압생트(향쑥이라는 허브가 주원료)라는 술을 즐겨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과 함께 황시증에 걸렸다는 것이다. 또한 압생트는 뇌세포를 파괴하고 정신착란과 간질발작을 일으키는 성분까지 들어있는데 고흐는 점차 격렬해지는 정신착란과 환청으로 결국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르고 만다. 그 후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그 사건 후 고흐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고 <별이 빛나는 밤>과 <붓꽃>이라는 작품을 그린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그림 중 하나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S금고에 등장했던 그림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19금 드로잉의 대가 에곤 실레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인물의 누드는 기본, 남녀 가릴 것 없이 인물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드로잉을 한다. 그는 오직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예술을 실천한 ‘순수 지존’이었다.


 젊은 날 증권맨이었던 폴 고갱은 생계도 책임지지 못하는 화가의 길을 선택한 후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급기야는 아내가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리는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고갱만의 예술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중 그는 드디어 ‘원시와 야생’이라는 자기만의 콘셉트를 찾는다. <예배 뒤의 환상> <마리아를 경배하며> 그리고 보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등의 작품을 남긴다.     


 파블로 피카소는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그를 매우 존경했다.  저자는 ‘피카소는 자신의 아버지를 세잔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아버지는 마티스 인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동시대 같은 파리에서 활동했던 피카소는 마티스의 작품에서 그 아이디어를 훔쳐오곤 했다는 것이다.

 문학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표절 또는 표절까지는 가지는 않더라도 다른 작가의 좋은 표현들을 슬쩍슬쩍 가져다가 써먹는 이상한 도둑질이 생각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작가가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예술가들은 어차피 상호 텍스트가 아니겠느냐고 하는 말도 들었다. 한 때 마티스는 피카소를 ‘노상강도’라고 칭하며 멀리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마티스와 피카소는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예술을 공유하고, 적용하고, 실험하며 서로의 삶과 예술을 서로가 키워주었다.     


 마르크 샤갈은 이름이나 화풍 때문에 프랑스인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화가다. 당시 유대인들은 게토에 강제 격리된 채로 살면서 많은 차별을 당하고 있었다. 유대인 촌놈이었던 샤갈은 러시아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스물셋의 나이에 파리로 오게 된다. 샤갈에게는 매일 열리는 파리의 미술관과 전시 그 자체가 선생이었다. 그는 파리의 미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기 시작하고 결정적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영원한 스승,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만난다. 그는 파리에 도착한 지 1년 만에 자신을 대표할 걸작 <나와 마을>을 탄생시킨다.

 젊은 시절의 샤갈이 사랑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주로 그렸다면 , 레닌과 히틀러를 경험한 그는 나이가 들면서는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비극을 작품으로 그렸다.

 노인이 된 샤갈은 105점의 동판화가 담긴 <<구약 성경>>을 출판해 내고 다시 105점으로 제작했던 <<구약 성경>>이야기를 단 12점의 <성서 이야기> 시리즈로 집약하는 일생일대의 작업을 완성한다. 그 12점의 <성서 이야기>는 니스 샤갈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샤갈이 바라던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평화와 삶의 안식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중에 파는 남성용 소변기를 사 와서 거꾸로 뒤집어 놓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에 ‘R. Mutt'라는 무명작가의 이름으로 출품하는 이상한 기획을 한 예술가는 바로 마르셀 뒤샹이다. 그의 작품 <샘>은 뉴욕 미술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다. 뒤샹은 작품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객의 역할을 간파했고, 관객을 관찰자가 아닌 창조자로 보았다. 그는 작품에 어떤 의미를 의도적으로 담기보다 의미를 열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자유롭게 해석하며 의미를 창조하기를 원한다. 생각하는 미술 즉 ’ 개념미술‘이 탄생한 것이다.     

 

 저자 조원재가 재미있게 풀어준 미술작품과 예술가의 삶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미술과 문학이 너무나 닮아있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글의 행간에서 작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숨소리와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그 작가를 만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과 같다면 하나의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길모퉁이 카페에서 그 예술가를 만나 질펀하게 수다를 떨다가 나오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미술을 ‘읽는다’고 말할 수 있고, 글을 ‘그린다’고 말할 수도 있고, 에곤 실레의 작품에서처럼 자화상을 ‘쓴다’ 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림이든 문학작품이든 모든 예술작품에는 그 작가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고통이 녹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술은 위대하다’라는 혹자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그것은 예술은 곧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은 위대하며 동시에 소중하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에드바르트 뭉크가 그랬고, 인생의 도상에서 마주친 가혹한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승리한 프리다 칼로가 그랬고, 원시와 야생의 삶을 동경하며 철학적인 질문을 그림에 담아낸 폴 고갱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보편적 인간의 삶의 본질을 찾아 글 속에 담아보리라는 의지를 다져본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접수한 폴 세잔처럼,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의 고통과 성서 이야기라는 소재를 가지고 모든 사람의 안식을 추구했던 마르크 샤갈처럼 작가로서 나만의 콘셉트에 담아낼 주제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준 고마운 책이다.

 책을 덮으면서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느슨해졌던 글쓰기에 대한 긴장과 열정을 다시 되살려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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