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앞에 술 한 잔 올린다.
소주병을 기울이자 해묵은 애증이 퐁퐁 쏟아진다. 한 잔 따라놓고 기다려도 드시질 않아 아버지 무덤 앞에 부어드린다. 한없이 다정하던 아버지 생각에 넋을 놓고 앉았다가 오랜만에 아버지하고 대작이나 할까 생각한다. 아버지하고 같이 한 잔 하려다 갑작스레 효심이 발동하여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진로, 서둘러 떠난 아버지 산소에 남은 이슬마저 뿌려드린다.
“그냥, 털어 넣어라, 쭈욱 마시라니까.”
초경을 시작하고 몇 년이나 지났을까. 여고생이던 나는 생리혈로 인한 혈액의 손실 때문인지 어지럼증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동네 정육점에 부탁해서 소 잡는 날이 되면 간, 지라, 천엽 같은 것을 끊어왔다. 그런 것들이 빈혈에 좋다며 나를 먹이고 싶어 했다. 얼른 오라는 재촉에 안방으로 가보면 개다리소반에 그런 이상한 것들 한 접시와 진로 소주 한 병이 놓여있었다. 아버지는 소주잔에 소주를 한 잔 그득하게 따라 놓고는 그 소주잔을 입 안에 탁 털어 넣고 지라 한 점씩 먹으라고 시켰다.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숭한 것을 쉽게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는 나를 위해 생각해 낸 처방이었다.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쓰디쓴 소주를 억지로 입안에 털어 넣고 입속이 정신없는 사이에 지라 한 점씩을 삼켰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배운 소주였다.
세월이 흘러 진로가 참이슬이 되면서 맛이 순해졌다.
아버지가 떠날 때 스무 살이던 나는 아버지 가실 때보다 훨씬 더 나이 많은 중년의 여자가 되었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도 조금은 순해졌다.
산세가 험해서 자주 찾아오기도 힘든 아버지의 무덤 옆에는 뽀얀 송이가 자라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골동네는 올해도 울긋불긋 곱게도 물들었다.
올망졸망한 삶의 보따리가 작은 지붕마다 내려 앉아있는 모습이 왠지 애처롭다.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땅도 한 번 내려다보고 산다는 일과 죽는다는 일에 대하여도 한 번 생각해본다. 산다는 것은 아픔을 견디는 것이고 도꼬마리처럼 자꾸만 따라붙는 그리움을 떼어내려고 애쓰는 것이며 더러는 그런 것들을 모르는 척 외면하고 가는 것이다. 그립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하고 가는 것이다.
그러면 죽는다는 일은 또 무엇일까. 죽은 사람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이며,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다가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채 아버지 무덤 앞에 놓인 빈 소주병을 챙겨 봉지에 담는다.
아버지 산소에 부어드린 소주 탓인지 온 산이 붉다.
얼큰하니 취기 오른 가을 산에 아버지를 홀로 두고 잡풀 우거진 외갈래 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검은 봉지 속의 빈 소주병과 삶과 죽음이 함께 흔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