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링(handling)하는 맛을 아는가?
2차선을 달리고 있는 나에게 옆자리에 탄 남편은 차가 적은 1차선으로 옮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못들은 척하고 그대로 2차선을 달린다. 왜냐하면 차선을 옮길지 말지는 핸들을 잡은 사람 마음이고, 운전자의 판단에 따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늘 남편이 운전하는 차 옆자리에만 타고 다니다가 조그마한 내 차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차를 끌고 복잡한 도로로 나가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좋은 것도 몰랐다.
아파트 창문을 통해 주차장에 주차해놓은 내 차를 내려다보면 좋은 것 보다는 근심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아무리 소형차라고 해도 저 큰 물건을 어떻게 끌고 다닐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전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직접 핸들링하는 맛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 맛은 남이 운전하는 차에 그저 얹혀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가 핸들을 왼쪽으로 틀면 차가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틀면 차는 오른쪽으로 간다. 조금만 틀면 조금 움직이고 핸들을 완전히 감으면 차가 많이 돈다. 가다가 멈추고 싶으면 브레이크를 밟고 달리고 싶으면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되고, 더 빨리 달리고 싶으면 더 가속을 하면 된다. 계속 가고 싶으면 가면 되고 돌아오고 싶으면 차를 돌려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운전수 맘이다.
지금도 여전히 운전에는 자신이 없지만 지금 운전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잘하든 못하든 자기의 삶은 자기가 핸들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고 싶어한다.
남한과 북한이 휴전상태에서 수십 년을 대치하고 있고 주변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 속에 우리는 놓여 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한반도 운전자론’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강대국들의 힘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운전자론’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 나는 그 말이 일단 반가웠다. 대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해결점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가 핸들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타인으로부터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당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이다.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타인의 권력이나 물리적인 힘에 의해 이끌려감으로써 발생한 사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자기 삶에서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일이란 각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자기의 존엄을 지키며 산다는 말은 타인의 존엄도 지켜주며 살아야한다는 말이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을 떠나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주체적으로 자기의 삶을 운영하는 행복한 운전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운전한다.
내 인생의 주인은 오직 나밖에 없으므로 내 인생은 내가 핸들링한다.
매 순간마다 핸들을 어느 방향으로 돌릴지 내가 결정한다. 도로사정에 따라 얼마만큼의 속도를 낼지도 내가 결정한다. 어느 지점에서는 필요하다면 유턴을 하기도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를지 말지도 내가 결정한다. 복잡한 고속도로를 계속 달릴 것인지 아니면 조금 늦더라도 국도를 타고 주변 풍경까지 즐기면서 천천히 갈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옆자리에 누구를 태우고 함께 갈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운전하면서 어떤 음악을 들을 것인지도 내가 선택한다. 더러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듣고 싶은 노래를 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자기의 인생은 스스로 핸들링하는 것이 좋다.
직접 운전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위험을 만날 수도 있지만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결코 핸들을 놓지 않을 것이다.
*위 사진은 앙리 마티스의 스케치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