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토당토않게 본뜬 물건이 나타나서

크고 화려한 성당들은 과연 예수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by 은해


‘진리는 만인이 함께 가질 물건은 아니거든, 이 손 저 손 넘어가는 동안 쇠퇴되고 시체가 되고 썩어버리고 마른 허울만 남고 종국에는 얼토당토않게 본뜬 물건이 나타나서 만인을 호령하게 되는데 그것에 영합되면 학자는 학자가 아닌 동시 우중과 위정자들의 공범자가 될 수밖에 없지.’

-토지 1부2권 75쪽에서 인용/ 마로니에북스-

소설에 등장하는 장암선생은 최치수가 어릴 적부터 사사해온 치수의 스승이다. 위의 인용문은 그 장암선생의 생각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종국에는 얼토당토않게 본뜬 물건이 나타나서’라는 지점에 멈추어 서게 되었다.


이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불상(佛像)들은 과연 부처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유럽 여행 갔을 때 보았던 크고 화려한 성당들은 과연 예수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이 손 저 손 넘어가는 동안 허울만 남고 본뜬 물건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호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드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우중(愚衆)이라고 부르며 우매한 백성을 배고픈 이리라고 하는 장암선생의 생각에 다 동의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서민에게 애정을 느끼며 신뢰를 잃지 않았던 문의원의 생각에 더 마음이 끌린다.

그런데 진리라는 것이 이 손 저 손 넘어가는 동안 마른 허울만 남고 종국에는 얼토당토않게 본뜬 물건이 나타나서 만인을 호령하게 된다는 대목에서는 멈추어서 서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참된 진리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엷은 미소 같은 거, 따스한 마음 같은 거,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주는 주름진 손등 같은 거, 뭐 그런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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