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차생이 없다믄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by 은해


‘참말로 차생(次生)이 없다믄 땅속에 누운 어맨들 우찌 한을 풀 것이며 낸들 우찌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겄소. 서럽게 나서 서럽게 살다가 서럽게 죽어야 하는 우리네들 신세가..... 어매, 우찌 아니 서럽다 하겄소?’

토지 2부1권 364쪽에서 인용 / 마로니에 북스


서럽게 태어나 서럽게 살다가 서럽게 죽어야 하는 무당 딸, 월선이가 죽은 어매에게 하는 하소연이다.

차생(次生) 즉 다음 생이 없다면 어떻게 한을 풀 것이냐고 서러워한다. 다음 생에서라도 한을 풀고 잘 살아보자는 바램이다.


‘천상재회’라는 가요가 있다.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그대를 다시 만나면 세상에서 못다 했던 그 사랑을 영원히 함께 할래요.’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인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이다.

그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다음 생이 있다고 믿어서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세상에서 못 다한 사랑이 너무나 아쉽고 가슴 아픈 나머지 천상에서 다시 만나자고 노래해보는 것이다.


다음 생이 실제로 있다고 진지하게,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있다고 믿고, 지옥에 떨어질 형제들이 불쌍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서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이야기하면서 전생과 후생이 있으니 현생을 선하게 살아야한다고 가르친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차생(次生)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얼마간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늘나라로 갔어요.‘ 드라마의 단골 대사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어느 특정 종교의 신자도 아니고, 그 ’하늘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 믿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내 사랑하는 이를 언젠가는 그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그 말속의 ’작은 위로‘가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은 아닐까?

참말로 차생(次生)이 없다면 너무 서러워서 우리는 다음 생이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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