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정(情)이었습니다.
사랑의 다른 이름, 정
‘나에게 글을 배우게 하시고······ 어릴 적에는 나는 그것을 크나큰 은혜로 알았지요. 그러나 그건 정(情)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정 말입니다.
상전이 하인에게 베푸는 은혜,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 어른은 웃으신 일이 없었지만 웃음보다 더 정을 느끼게 하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 어른 눈에는 자기 자신을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빛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슬퍼할 줄 모르고 불쌍하게 생각는 마음이 없이 어찌 남을 위해 슬퍼하겠습니까. 배고파본 사람만이 배고픈 것을 알듯이 말입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알듯이 말입니다. 해서 그 그렇지요 나, 나도 그렇습니다. 그분을 불쌍히 여기고 정을 느낀 겁니다.’
토지 2부1권 398쪽에서 인용 / 마로니에 북스
용정으로 이주해 온 뒤 서희의 절대적인 조력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길상이다.
길상은 그것은 하인으로서 상전에게 입은 은혜를 갚아야한다는 ‘도리’ 때문이 아니라, 그건 정(情)이었다고 말한다.
하늘같은 상전인 윤씨부인과 하인이요 심부름꾼이었던 길상이 사이에 느끼는 정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끼는 정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은 참 인정이 있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인정머리가 없다고도 말한다.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정을 베푸는 사람들을 보고 인정이 많다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인정머리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정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인가?
사람이 사람에게 느끼는 연민,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정을 느끼게 된다. 저 사람 배고프겠구나, 저 사람은 춥겠구나, 저 사람은 얼마나 아플까 하는 마음이 드러나 상대에게 전해질 때 정을 느낀다.
그 상대가 남자 또는 여자일 수도 있고, 어린아이일 수도 있고, 상전일 수도 있고, 하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그 누구든 사람이 사람에게 느끼는 따뜻한 마음이 바로 정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런 따스한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따스한 마음을, 정(情)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