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혼자 서야한다?
“상현이 넌 걱정 안 해도 돼. 너는 너의 앞일만 생각하면 되는 게야. 여자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웬만한 남자라면 만나서 얽매여 살게 마련이요 사내는 그렇지 않아. 언제든지 혼자 서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내가 전에 말했듯이 고향에 가서 사돈댁과 상의하여 일본에 가도록 해라.”
토지 2부2권 48쪽에서 인용 / 마로니에북스
하인 길상과 혼인하겠다는 서희의 말에 상처받은 아들 상현에게 아버지 이동진이 타이르고 당부하는 말이다.
여자란 아무리 잘나도 남자에게 얽매여 살게 마련이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사내란 언제든지 혼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20세기 초를 살아가고 있던 양반가의 사람 이동진이 한 말이기는 하다. 나는 이 말에서 한국사회에서 남자들이 등에 짊어지고 있는 숙명 같은 것을 읽었다.
‘사내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나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남녀 성별에 따른 갈등을 이야기할 때, 항상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해왔다. 첫째는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공정하게 얘기한다 하더라도 여자들이 받아온 차별이 남자라서 받아온 차별에 비하면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들을 낳아 키우면서 이 세상을 남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아들이 사내로서 살아가야하는 세상을 바라보게된 것이다.
‘사내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여자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가 그 성별에 따라서 부여하는 어떤 기대 같은 것이 있는데 그건 불편한 틀이기도 하고 더러는 아주 가혹한 감옥 이기도 하다.
지금은 시대가 변하여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교육받고, 경제활동하고, 결혼 후에는 가사분담도 반반씩 한다는 세상이 되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하여 성에 따른 차별은 당연히 없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그건 대 원칙이다.
그런데 난 결혼할 나이가 된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자는 남편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남자는 여자 밥을 먹을 수 없단다. 사내는 어떤 경우에도 홀로 서야하는 거야.”
나는 차별주의자가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