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슬픈가

불덩이 같은 슬픔이

by 은해


‘열띤 송장환 음성을 바람 소리처럼 이제는 무심하게 들으며, 술잔을 손에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길상의 가슴에 돌연 뜨거운 것이 치민다.

불덩이 같은 슬픔이, 생명의 근원에서 오는 눈물 같은 것이, 무엇 때문에 슬픈가.’

토지 2부2권 19쪽에서 인용/ 마로니에북스

소설 속 길상은 고아로, 우관 스님에게 거두어져 절에서 자랐다. 최참판댁의 심부름꾼으로 소년기를 보내고, 후에 간도로 이주하여 서희의 조력자로 살아간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처지로 외롭게 자랐지만, 건강하고 잘생긴 젊은이로서 천성적인 고고함과 위엄을 갖춘 인물로 주변의 존경을 받는다.

나중에는 상전으로 모시던 서희의 결혼제의를 받아들여 두 아들을 두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떨쳐버릴 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아픔을 경험하고, 그 아픔을 만날 때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가 경험해본 가장 큰 아픔은 이별에 따른 상실감이었다.

나이 스무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너무 놀랐다. 그리고 너무 많이 아팠다. 심지어 그 때 느낀 그 아픔은 두고두고 슬픈 감정을 느끼게 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두 눈에 눈물이 맺힌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삶에서 느끼는 슬픔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명의 근원에서 오는 불덩이 같은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 것은 결국 이 땅위의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소멸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다가 언젠가 나도 떠나게 되는 것,그것이 우리가 가는길이다.


아무리 현대과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아무리 어떤 종교가 천국의 기쁨을 목청껏 외친다고 해도,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나뭇가지 위에 앉은 한 마리 새는 오늘 아침에도 울고 있다.

슬픔을 표현할 때 슬픔에 젖는다고 하고, 슬픔에 잠긴다고도 하고, 슬픔에 빠진다고도 한다. 어느 땐 슬픔이 북받쳐 오른다고 하고, 슬픔을 달랜다고도 한다.

우리는 슬픈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거나 참지 못할 때는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그런 슬픔을 딛고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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