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마음하고 하누님 마음은 고르다고들 하는데 어이구, 세상사를 가만히 보믄 그것도 빈말이라. 어질고 착한 사람은 도처에서 고생을 하고 남으 입에 든 밥이라도 뺏어묵을 듯이 해구는 사람들만 떵떵 울리고 사는 거를 보믄은.”
토지 2부2권 292쪽에서 인용 / 마로니에 북스
기화(봉순)의 수양어미가 되어 기화를 보살피던 봉춘네가 석이를 보고 하는 말이다. 봉춘어매가 보기에도 세상사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어질고 착한 사람은 도처에서 고생을 한다?
남의 입에 든 밥이라도 뺏어묵을 듯이 그악스런 사람들은 떵떵거리고 산다?
세상을 살다보면 참 ‘뭐 이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선하고 바르게 지켜야할 것을 지키면서 살아가다보면 뭔가 나만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포츠를 할 때 경기장에서는 정해 놓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더러는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주 애매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서로 시비가 붙으면 심판이 와서 누가 옳은지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려준다. 그런데 바로 그 심판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참 큰일이다. 그 심판이 뒷돈을 받았거나, 그 심판을 임명한 사람이 특정집단의 이익을 비호하고 있는 인물이라면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들이 사는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 심판’을 심판하겠다고 나선다. 그렇다면 ‘그 심판’을 심판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과연 공정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물질보다는 ‘정신’이 살아있는 사회가 되면 달라질 수 있을까?
유교는 모든 사람이 군자가 되는 세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유교의 가치를 목숨처럼 지키려했던 조선시대는 과연 공정한 사회였을까? 기독교는 목이 터져라 사랑을 외치지만 기독교가 가장 힘이 강했던 중세시대는 오히려 암흑이었다.
이 모든 불공정과 혼란을 심판해 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이는 ‘신이 있다.’라고 하고, 어떤 이는 ‘신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라는 수레바퀴에 깔려서 다치거나 죽은 수많은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존재가 필요하니까.
소설 속에서 조준구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석이 아버지 정한조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니까....
부모 마음하고 하누님 마음은 고르다고 하는 것도 다 빈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