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은 푸성귀처럼

잠의 마술이다.

by 은해


“하늘이 온통 시뻘겋게 타들어 가는데 갈까마귀떼가 울면서 날아가는데 관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품을 하고 나서 석이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 눈에 생기가 영롱하다. 가위눌린 것처럼 헛소리를 지르고 늙은이처럼 지쳐 보이던 얼굴은 비 맞은 푸성귀처럼 풋풋해졌다.”

토지 2부2권 362쪽에서 인용 / 마로니에 북스


늙은이처럼 지쳐보이던 관수의 얼굴이 충분히 자고 일어나더니 비 맞은 푸성귀처럼 풋풋해졌단다.


비가 온 뒤 텃밭에 나가보라. 폭염에 지쳐있던 푸성귀들이 다시 푸릇푸릇 살아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모든 푸성귀가 하늘의 은혜를 받은 듯 풋풋해져 있는 것이다. 푸성귀들도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푹 자고 일어나면 우리 몸은 회복된다.

잠의 마술이다.


비 맞은 푸성귀처럼 풋풋해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난 밤 지치고 곤하여 깊은 잠에 빠졌다가 아침이면 슬며시 자동으로 깨어난다. 나는 그 일이 참 재미있다. 죽은 것처럼 자다가도 아침이면 다시 살아나 눈을 뜨고 깨어나도록 설정된 그 시스템이 참 신기하지 않은가. 인간이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하루를 살고 하룻밤을 자고 또 하루를 살고 또 하룻밤 잘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잠을 자는 그 시간 동안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새로워진다. 감기에 걸리거나 어디가 아플 때도 잠을 자야한다. 잠이 그 어떤 약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자고 또 자고, 실컷 자고 나면 우리도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서 맥베스는 덩컨왕을 살해 한 후 '못 자리라! 맥베스는 잠을 죽여버렸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맥베스는 잠에대해 이렇게 말한다.

'순진한 잠, 엉클어진 근심의 실타래를 푸는 잠, 하루하루 삶의 죽음, 중노동을 씻는 목욕, 상한 맘의 진정제, 대자연의 일품요리, 이 삶의 향연에서 주식인데...'


살다보면 갖가지 어려움과 곤란을 겪게 된다.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나면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탈진한다. 번 아웃(burn out)이다. 그럴 때는 잠을 잔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잠은 상한 마음의 진정제요, 중노동을 씻는 목욕이기도 하다. 오래오래 푹 자고 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 비 맞은 푸성귀처럼 푸릇푸릇해지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또 다시 일어나 살아간다.

이전 16화그것도 빈 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