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사람이간디?

아들은 사람이어서 귀하고, 딸도 사람이어서 귀하다.

by 은해


“말이 그렇다 그거 아녀? 아무튼지 간에 동네 기둥이 뚝 뿌러졌는디, 그 댁 서방님이 비명횡사한 게 그것이고오, 다음에는 최씨네 핏줄이 끊어진 건디, 여식 아이가 하나 있었지만 여자가 사람이간디? 자식이 어미 성씨 따르는 법은 없인께로, 그 차중에 괴정이 돌아서 마을을 싹 쓸어부렀고, 참말 대들보가 뿌러졌지라우”

토지 2부3권 34쪽에서 인용 / 마로니에 북스


여식 아이가 하나 있었지만 여자가 사람이겠느냐는 말이다. 여자는 사람도 아니다?


소설 《토지는 1897년의 한가위 즉 구한말에서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그 날 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 시간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지나친 언사도 아닐 것이다. 자식이 태어나면 아버지의 성씨를 따르니까 아들이 있어야 집안의 대를 이을 수 있고, 딸은 키워서 남의 집에 주어버릴 그런 존재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는, 여자라는 서러움에 더해 딸 밖에 낳지 못한 죄인으로 살기도 했었다. 더러는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사례들도 있었으니 참 기가 막힌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정초에 아버지 손님이 오셨는데 어른들이 가서 세배를 하라고 했다. 남동생과 나란히 들어가서 세배를 하고 나니, 오신 손님께서 동생에게만 세뱃돈을 주었다. 내가 누나였지만 그 손님은 아들인 동생에게만 세뱃돈을 주었던 것이다. 옆에 뻘쭘하게 서있던 나는 너무 민망했다. 그 분은 나의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

그 황당했던 기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남녀가 구별되어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합니다.’

도가의 경전 중 하나인 열자에 나오는 영계기의 말이다. 영계기가 자기는 남자가 됨을 얻었으니 그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 말을 들은 공자의 대답인데 ‘훌륭하도다. 능히 스스로를 너그럽게 하는 자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세계 4대성인 중 한 사람인 공자의 인간에 대한 인식이 그정도라니 실망스럽다. 도교의 영향이든 유교의 영향이든 ‘남존여비’의 그릇된 인식으로 차별받고 고통 받았던 여성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것이 어디 우리나라의 일만이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일은 아주 오랫동안 있어온 일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많이 다르지만 남자도 사람이고 여자도 사람이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서 딸이 더 좋다며, 딸 낳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딸이 더 좋아서 아들을 소외시키는 일은 ‘남존여비’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남자가 행복해야 여자도 행복하고, 여자가 행복해야 남자도 행복한 법이다.


딸은 딸이어서 좋고 아들은 아들이어서 좋다.

아들은 사람이어서 귀하고 딸도 사람이어서 귀하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존중하며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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