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에게는 재난이었을 뿐

뜻밖에 일어난 재앙인것이다.

by 은해


“환이 이노움! 네가 어찌하여 인륜을 범한 죄인으로서 원한을 품느냐! 여인에게는 재난이었을 뿐, 원한을 풀고 명복을 빌어야 하거늘”

토지2부2권 233쪽에서 인용 / 마로니에 북스


숨결이 거칠어진 우관이 눈을 부릅뜨고 환이에게 하는 말이다. 김환은 윤씨부인이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우관스님의 동생인 김개주에게 겁탈당하여 낳은 아들이다. 우관이 있는 연곡사에서 성장하다가 동학혁명 당시 아버지인 동학 접주 김개주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 후 방랑하다가 윤씨부인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최참판가에 찾아가고, 그 댁 하인이 되어 구천이로 불리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 사건은 여인에게는 재난이었다.

요절한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천은사에 갔다가 휴양차 와 있던 김개주에게 겁탈을 당해서 임신한다. 문의원과 바우할아범 내외 그리고 무당 월선네의 도움으로 절에가서 아이를 낳고 그 일은 영원한 집안의 비밀로 묻힌다.

남편이 죽은 후지만 정절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아들 최치수에게 냉정한 어머니가 된다. 한편 환이에게는 어미로서 젖 한 번 물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움을 느낀다.

작품 속 인물이지만 겁탈을 당하고 임신하여 아이까지 낳은 윤씨부인의 마음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짐작이 감다. 아마 지옥이었을 것이다.

겁탈을 당한 것만 해도 끔찍한 일인데, 여성의 몸은 임신이라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고, 아이를 가지면 낳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그건 여인에게 재난, 즉 뜻밖에 일어난 재앙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 환이 윤씨부인에게 앙심을 품고 찾아오다니, 참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에 본 <25시>라는 영화가 있다. 안소니 퀸 주연의 영화인데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온다. 이유도 모른 채 전쟁에 끌러 다니다 돌아와 보니 아내는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그녀는 소련군에게 겁탈을 당했던 것이다. 주인공 남자는 그렇게 태어난 4살난 아이를 받아들인다.

2차대전 말기의 그 소련군에 의한 독일 여성 전시강간 사건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 사건의 결과로 수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이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보통은 그런 재난을 당한 여자에게 비난까지 얹어주는 2차 가해가 발생한다.

여인에게는 재난이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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