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나의 벌거벗은 모습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다른 식구들은 아직 잠들어 있고 창밖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입니다. 정신은 깨었지만 몸은 아직 일어날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서 말간 얼굴의 내 영혼을 만납니다.
어제 하루 동안도 가면을 쓰고 살았던 것일까요. 그 가면 뒤에 숨어있던 진짜 내가 내 안에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 사람에게는 ‘괜찮아’하고 말했지만 새벽에 잠이 깨어 생각해보니 나는 전혀 괜찮지가 않습니다. 내 안의 어린아이 하나가 울고 있습니다. 제법 서럽게 흐느끼고 있습니다. 오래된 상실의 아픔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 것일까요. 울지 말라고 달래 볼까요. 아니면 그저 그 아이가 실컷 울 수 있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인가요. 잠시 갈등하다가 나는 그냥 그 아이가 울도록 내버려두기로 합니다. 이 새벽에 아무도 보지 않는데 좀 울면 어떨까 싶어서요. 울고 싶은 아이는 울고 싶은 만큼 운 뒤에 달래야 합니다. 실컷 운 뒤에 말을 걸어야 그 아이가 대답을 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 너 정말 힘들었지?’하고 말을 걸면 그 아이가 대답을 할지도 모릅니다.
새벽은 내가 가장 순수해지는 시간입니다.
낮 시간에는 내 마음 어느 한쪽에 숨어 있었던 외로움이 스멀스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나는 왠지 새벽에 가장 외롭습니다. 새벽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기 때문일까요. 온 세상이 아직은 너무 조용해서일까요. 아니면 고독이 인간 존재의 본질인 까닭일까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잠시 그 외로움을 끌어안고 사랑을 나눕니다. 있는 힘껏 끌어안고 애무를 합니다. 오래된 그 외로움을 마치 오늘 처음 사랑하게 된 연인처럼 격정적으로 포옹을 합니다. 쓸쓸하면서도 달콤한 나 혼자만의 밀애의 시간입니다.
그 달콤 쌉싸래한 외로움을 즐기고 나면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외롭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외롭다는 것은 그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는 살아있기에 외로운 것이라는 대단한 결론에 이르면 조금은 힘이 납니다. 그 누군가를 위해 아침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슬 일어날 채비를 하게 되지요.
새벽은 가슴이 설레는 시간입니다.
아직 헐어 쓰지 않은 온전한 하루가 나에게 허락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배가 부른 듯 든든합니다. 독일 화가, 마케의 ‘사과를 들고 있는 초상’에 나오는 여인처럼 아직 베어 물지 않은 사과를 은밀하게 바라봅니다. 오늘도 그 접시에 담긴 과일의 맛을 음미해 보려 합니다. 예쁜 색깔의 그 겉껍질은 조금은 거칠기는 하지만 영양가가 껍질 부분에 많다고 하니 그냥 먹을까 생각하다가 아니, 껍질은 딱딱하고 씹기도 부담스러우니 부드러운 과육만 즐기고 싶은 마음이 유혹이 되어 다가옵니다. 어쨌든 그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기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새벽에는 그 소중한 오늘이라는 과일을 흐르는 물에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문질러가며 닦아서 예쁜 접시에 담아 놓습니다.
그 오늘이라는 하루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맛있고 몸에도 좋은, 그리고 식탁에 올려놓았을 때 보기에도 아름다운 그런 하루를 살아내기를 이 새벽에 소망하게 됩니다. 소박한 기쁨 같은 것들이 내 마음 한쪽에 일렁이며 지나가는 새벽은 내 앞에 놓인 시간들을 바라보는 설렘입니다.
새벽은 부활의 시간입니다.
차고 단단한 어둠을 뚫고 새벽이 오는 시간은 축복입니다. 어젯밤 죽은 듯 잠들었던 이 세상과 내가 새벽이 되면 다시 살아나니까요. 밤의 어둠 속에 죽음의 그림자를 던져버리고 우리는 찬연히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내가 살아있음을 이 세상에 선포하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아침이 오는 길목입니다. 그 길목에 서서 나를 반기는 모든 것들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오래된 그리움이든, 목구멍까지 그득하게 차오르는 서러움이든, 달콤 쌉싸래한 외로움이든, 일렁이며 다가오는 설렘이든 나의 두 팔로 다 감싸 안고 내 앞에 다가 선 아침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아침에는 생명이 느껴집니다. 아침에는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의 재촉이 밉지 않습니다. 늦었다며 서두르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부산스러움이 싫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있어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생명을 되살리는 새벽이 좋아서 매일 새벽을 기다립니다.
거룩한 부활의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