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길목 얼음장을 밟듯이

사람과의 관계는 소중히 다루어야한다

by 은해


우지직하고 얼음장이 깨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이 오면 산골짝 계곡에 겨우내 얼어있던 얼음장이 얇아진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할금거리며 내 마음을 핥아대는 봄의 정령에게 혼을 빼앗겨서일까요. 나도 모르게 늘 하던 대로 얼음장 위에 폴짝 발을 내 디뎠더니 그만 얇아진 얼음장이 깨져버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이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차가운지 온 몸이 다 얼어버리는 듯했습니다. 조심했어야지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소용없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봄을 시샘하며 가자미눈을 뜨고 돌아다니는 꽃샘바람 때문에 발이 얼어 굳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 아픔을 견디느라 온갖 용을 다 쓰면서 집까지 겨우 도착해서 할머니 방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할머니 방에는 늘 따뜻한 재가 담긴 화로가 놓여있었거든요. 젖은 양말을 벗고 얼었던 발을 녹이느라 발을 화로 가까이 갖다 대다가 발이 그만 화롯불에 닿아서 깜짝 놀랍니다. 아프다 못해 쓰리기까지 합니다. 할머니가 언 발을 주물러 주면서 말했습니다.

언 발은 그렇게 급하게 녹이는 것이 아니라고. 가만가만 주물러주면서 천천히 녹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고. 한 참을 그렇게 주무르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다렸더니 그제야 얼었던 몸이 스르르 풀리면서 몸도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뿌지직하고 우리들의 관계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늘 소중히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서로 신뢰하며 속마음을 나누는 좋은 친구라고 믿었습니다. 서로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고, 만나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만날 때마다 꽤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가 연락을 딱 끊어버렸습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낯빛이 달라졌고 인사도 마지못해 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관계가 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친구는 무엇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인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단단히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이야?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그 친구와 다른 이의 의견이 서로 충돌한 적이 있었는데 믿거니 하고 그 친구의 편을 들지 않고 다른 사람의 편을 들어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 때문인가? 그저 짐작할 뿐입니다.

제법 탄탄하리라 믿었던 그 친구와의 관계가 사실은 봄이 오는 길목의 얼음장처럼 얇았던 것일까요. 그래 조심했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해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항상 무례하지 않도록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다치고 깨지기 쉬운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가깝고 친한 사람일수록 더 예의를 갖추어 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더 소중하니까요.

믿었던 사람에게 외면을 당하고 보니 마음속이 어느 날 느닷없이 도둑을 맞은 집안 꼴처럼 어수선한 것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오해를 풀어보려고 한 차례 노력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언 발은 뜨거운 불 가까이 가져간다고 금방 녹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주물러주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 지냈지만 그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 한 자락이 쑤시고 아파왔습니다. 그래도 그저 내 마음을 다독거리며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차 한 잔을 들고 소파에 앉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오래 기다리던 그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그 전화 한 통으로 내 마음도 언 발이 녹듯 말랑말랑하게 녹아버립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만났고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절기로는 입춘이 지나고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도 모르게 봄의 기운이 살랑이며 남실거립니다. 이맘때쯤이면 겨우내 얼어 있다가 얇아진 얼음장을 잘못 밟아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 친구와의 일이 떠오릅니다. 가깝고 친한 사람과의 관계일수록 소중히 여기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얼음장을 밟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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