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단상
신이 던진 주사위는 때로는 너무 무정하죠
어느 날 문득 죽음이 닥쳐오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지인의 장례식장이라도 다녀오는 날이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자주 생각하기도 싫고 또 자주 이야기하기도 왠지 달갑지 않습니다. 언젠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아주 먼 훗날의 얘기일 것이고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내가 죽으리라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죽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또 이 세상에 살면서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가족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들을 두고 떠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어기 제주도쯤 가서 작은댁 얻어서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 후쯤 빨래를 개던 어머니가 무심코 내뱉은 말입니다. 어느 날 병을 얻어 우리 곁을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입니다. 죽음이 슬픈 것은 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음에 있습니다. 한 번 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아무리 몸부림 쳐보아도 다시는, 다시는 볼 수 없기에 죽음은 애달픈 것입니다.
시앗을 보면 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먼 곳에 가서 다른 여자를 얻어 살림을 차려도 좋겠으니 살아만 있다면 더러는 한 번씩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하소연입니다. 십 년 후든 이십 년 후든 단 한 시간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더 견디기 쉬웠을 것을. 우리는 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음에 다 함께 절망했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그 길을 갔고 지금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아주 공평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주 젊은 나이에 삶의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고 백 살이 넘도록 살면서 많은 것을 누리고 가는 인생도 있으니 꼭 공평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 고통 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긴 시간 동안 너무도 큰 고통에 시달리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 세상과 인사도 못한 채 떠나가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마흔이 되던 해 여름에 떠났습니다.
마흔을 넘어 오십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얼마나 젊고 빛나는 나이인지를.
처음 아버지가 떠났을 때에는 우리에게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것이 서러워서 울었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내 어머니에게 남편이 없다는 것이 마음 아파 울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마흔이라는 너무도 젊은 나이에 가버린 아버지의 인생이 가여워서 웁니다. 삼 남매의 아버지로, 한 여인의 남편으로, 부모님의 외아들로 살아가던 그 모든 일상을 뒤로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헤아려 보면 가슴이 한없이 먹먹해져 옵니다.
‘신이 던진 주사위는 때로는 너무 무정하죠.’라는 영화 ‘맘마미아’의 주인공 도나 쉐리던의 노래 가사가 내 마음을 때립니다.
‘아! 인생이 이렇게 짧을 줄이야.’
우리는 어느 순간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지요. 그래서 옛 시인들은 인생을 일장춘몽이라고 하였나요. 깨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한바탕 꿈이라며 이 세상의 덧없음을 한탄하였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 젊음이 영원하기라도 할 것처럼 생각하였지요. 그런데 스물다섯 살이 지나면서부터 우리 신체는 노화가 시작된다고 하니 너무한 것 아닌가요. 혹자는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가는 것이라고도 하니 아. 너무 잔인한 말입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인 천상병은 ‘귀천(歸天)’이라는 시에서 인생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누구라도 어린 시절 소풍을 가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보물 찾기도 하고 김밥도 먹고 사진도 찍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 가버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조금 전에 도착한 것 같은 데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인생도 소풍과 같다고 노래한 시인의 비유는 절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아이 시절은 그저 부모의 손에 의해 길러지는 시기이고 청년이 되어서는 자기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 보지만 아직 인생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하는 시기이지요. 노년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아! 이것이 인생이로구나 하고 알게 되면 어느새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조금 더 머물다 가면 안 되는 것일까요. 어린 시절에는 소풍이 끝나면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돌아갈 때는 우리는 과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시인의 표현대로 우리는 하늘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우리가 돌아갈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너무나 짧은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떠나 버린 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가신 그곳이 평화의 나라이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 밖에는.
죽음은 우리의 영역이 아닌 것을요.
하지만 앞으로 백 년을 더 살 것처럼 오늘을 살고 싶습니다. 언제나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살고 싶습니다. 오늘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은 신의 선물이 아닐까요. 오늘을 살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