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내 그리움에게

그는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by 은해

샤워기 꼭지는 끊임없이 슬픔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그 쏟아지는 물소리와 수많은 물방울들 사이에 숨어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식구들과 등산을 갔다가 하산하는 길에 단골집인 맹구네 식당에서 얻어 마신 조 껍데기 술 탓인가 보다. 달착지근하면서도 텁터름하던 그 조 껍데기 술을 목이 마른 참에 벌컥벌컥 마셨다. 그랬더니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할 즈음에는 취기가 쓰나미가 되어 밀려오고 있다. 그 취기가 불러낸 것일까. 내 안에 오래된 그리움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 오래된 그리움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그는 피마자 잎을 뜯어서 거기에 물을 받아 약을 먹는다.

평생 교회당 같은 곳은 기웃거려본 적조차 없는 그가 처남댁의 소개로 산속에 있던 그 기도원을 찾아간 것을 보면 그의 병세가 얼마나 중했고 그의 심정이 얼마나 갈급했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곳에서 기도받기를 거절당하고 우리는 하얀 찔레꽃이 애잔하게 피어 있던 그 야트막한 산을 히마리 없이 내려왔다. 통증이 심했던 그는 약을 먹어야 했고 근처를 둘러보니 피마자 밭이 있었다. 그는 피마자 이파리를 하나 따서 산에서 졸린 듯 게으르게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약을 먹었다. 약을 먹고 얼마간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던 우리는 찻길이 있는 곳까지 간신히 내려왔다.

그는 버스들이 간간이 오가던 먼지 풀풀 날리는 그 신작로에 선 채로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했다. 아침에 기도원에 간다며 서둘러 떠나온 그 집으로 되돌아 갈 것인지 아니면 이 길로 더 큰 도시에 있는 병원을 다시 찾아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탈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얼마간 안타깝고도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난 뒤 그가 선언하듯 한 마디를 내뱉는다. 병을 고치기 전에는 집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우리는 그렇게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억지로 삼킨 밥이 내려가다 말고 목구멍에 걸린다.

오전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도심의 골목길에 있는 허름하고 조그마한 식당을 찾아왔다. 두 사람이 들어와서 된장찌개 일 인분을 시킨다. 식당 아줌마가 그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연신 흘끔거리며 쳐다본다. 그도 나도 정말 입맛이 없다.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환자인 그도 보호자인 나도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시로 온 그는 간 질환에 용한 전문의가 있다는 도심의 한 내과의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었고 우리는 근처 여관에 있을 곳을 마련하고 식당에서 넘어가지 않는 밥알들을 간신히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는 의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도심 이면도로에 있는 한 건물의 이층에 자리한 그 내과병원에 들어서면 급할 것 전혀 없다는 표정의 간호사들은 사무적인 태도로 접수를 받고 진료를 하는 의사도 매일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주사와 약을 처방해 준다. 약을 받아 들고 묵고 있던 여관으로 돌아오면 근처 얼음집에서 쪼개어 놓은 얼음 한 봉지를 사다가 발바닥까지 미열이 있었던 그의 몸에 올려놓곤 했었다.

그러기를 며칠이나 흘렀을까. 복수가 차 있는 그의 배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러왔고 그 내과병원의 의사는 더 큰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무책임한 의사소견서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비좁은 복도에 놓인 간이침대에 그가 누워있다.

택시를 불러 타고 큰 종합병원으로 달려와서 내과병원 의사가 써준 그 소견서를 내밀었다. 환자가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니까 서둘러 입원절차를 밟고 있는 동안 그는 그렇게 병원 복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바퀴 달린 그 간이침대 위에서 어서 병실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사정과 화내기를 반복한 끝에 겨우 병실을 얻어서 그가 침대에 몸을 눕힐 때만 해도 우리는 그 병실이 이 세상에서 그의 마지막 집이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담당의사는 진통제 처방 말고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고 있었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그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나는 처음부터 그에게 남은 시간이 몇 개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사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저 서로 모르는 척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그러던 어느 여름날 꼭두새벽에 그는 길을 나섰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길을 그는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마흔 살이 되던 해 여름에 아버지는 그렇게 떠났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딸을 남겨둔 채.


신작로에 서서 피마자 이파리에 물을 받아 약을 먹던 아버지의 모습이, 용하다는 소문의 한 내과의에게 병든 몸을 맡기고 병세가 호전되기를 기다리며 병원으로 올라가는 비좁은 계단에 앉아서 쉬어 가곤 하던 그 아버지의 모습이, 복수가 찬 배를 안고 병원 복도 간이침대 위에 몸을 꼬부리고 누워 있던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삼십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아, 오래된 내 그리움이여.


왜 이렇게 샤워를 오래 하냐고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도 나는 아직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슬픔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렇게 울고 서 있다.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 속에 나의 애절한 마음을 담아 보낸다. 보고 싶다고.

오래된 내 그리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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