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온종일 감꽃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닙니다
할머니는 사랑입니다
소녀가 꽃들에게 인사합니다.
연한 노란색의 보석들이 거기 있습니다. 촉촉하게 젖은 맨 땅 위에 예쁜 감꽃이 살포시 내려앉아 천사의 모습으로 소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감격스럽습니다. 미리 준비해 간 무명실이 꿰어진 바늘로 감꽃 하나, 감꽃 둘, 감꽃 셋....... 꿰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이 발견하기 전에 제일 먼저 그 보석들을 주우려고 소녀는 덜 깬 잠 깨우느라 두 눈을 비벼 가며 뒷마당으로 달려온 것입니다. 누군가 그 감꽃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이 혹시 밟아 버리고 지나가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소녀는 너무 여리고 고운 감꽃이 부서져 버리는 것이 싫습니다. 다행히 오늘 아침에도 아무도 감나무 밑에 오지 않았습니다.
감꽃 넷, 감꽃 다섯.......이라고 세어가며 무명실에 더 많은 감꽃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준비한 무명실에 감꽃이 가득 차면 소녀는 그걸 들고 할머니에게로 달려갑니다. 할머니는 그 무명실의 양쪽 끝을 모아 매듭을 지어 주고 목걸이가 완성되면 소녀의 목에 가만히 걸어 줍니다. 그제야 소녀의 얼굴에는 희미한 행복감이 묻어나고 일찍 일어나느라고 아침잠을 설쳐서인지 감꽃 목걸이를 목에다 건 채 하품을 해 댑니다.
감꽃을 꿸 수 있는 그 무명실은 할머니가 준비해 주셨습니다.
지난밤 할머니가 끝이 뭉툭한 바늘에 무명실을 꿰어서 주시면서 윗목에 놓여있는 반닫이 위에 올려놓으라 하십니다. 하지만 소녀는 내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감나무 밑으로 달려갈 요량으로 그 무명실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듭니다. 그런데 쉬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꽃들을 주우러 갈 생각에 마음이 살짝 설레기 때문입니다. 소녀의 눈에는 그 감꽃들이 너무 예뻐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혼자서 줍고 싶습니다. 아니 그 감꽃들이 너무 여려 보여서 다른 사람이 줍다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소녀만은 그 감꽃 하나하나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니까요. 어쨌든 내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잠을 청해보아야 합니다. 할머니가 소녀의 등을 슬슬 긁어 줍니다. 농사를 지으시느라 거칠어진 할머니의 손바닥이 아주 시원하게 느껴지면서 할머니가 불러 주는 자장가 소리가 점점 작아지자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립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꼬꼬닭아 우지 마라 우리 아가 잠을 깰라 멍멍개야 짖지 마라 우리 아가 잠을 깰라.......
할머니는 소녀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할머니는 소녀가 감꽃을 잘 꿰서 예쁜 감꽃 목걸이를 만들 수 있도록 무명실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뾰족한 바늘은 소녀가 찔려서 다칠 수도 있으니 안 됩니다. 포대 같은 것을 꿰맬 때 쓰는 끝이 조금 뭉툭한 바늘에 무명실을 꿰어 준비해 주십니다. 어쩌면 할머니는 소녀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뒷마당 감나무 밑에 떨어진 감꽃을 주울 수도 있었습니다. 소녀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감꽃을 꿰어서 감꽃 목걸이 하나쯤 후딱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할머니는 소녀가 만든 감꽃 목걸이보다 더 멋지고 큰 목걸이를 만들어 소녀의 목에 걸어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감꽃을 잘 꿸 수 있는 무명실을 준비하는 것이나 다 꿰고 나서 두 가닥의 무명실을 합쳐서 매듭을 짓는 일 같은 소녀가 잘할 수 없는 것만 도와주십니다.
할머니는 소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른 아침 뒷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 밑으로 달려가 노오란 감꽃을 주울 때의 작은 기쁨과 소박한 감동을 소녀에게 선사해 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그 아침에 할머니는 감꽃을 줍는 대신 소녀의 부스스한 얼굴에 피어나는 은은한 향의 웃음꽃을 줍는 즐거움을 누리셨을라나요.
소녀는 온종일 감꽃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닙니다. 이따금씩 감꽃 하나를 따서 먹어보기도 합니다. 달큼하니 감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여 한 참을 입에 물고 아껴가며 먹습니다. 감꽃 목걸이가 망가질까 봐 많이 따 먹지도 못하면서도 할머니 무릎에 궁둥이를 둘러대고 앉아서 놀 때는 감꽃 하나를 가만히 따서 할머니의 입에다 넣어줍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단발로 깎아 놓은 소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시거나 궁둥이를 두어 번 ‘툭 툭’ 쳐 주십니다. 할머니는 사랑입니다.
이제 중년이 된 소녀는 오월이 되면 감꽃 줍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집 뒷마당에 있던 커다란 감나무는 지금도 그대로 있을까요. 제법 큰 감나무였으니 집주인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그대로 두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설혹 주인이 바뀌어 그 감나무는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소녀의 마음속 감나무는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감꽃을 피워 중년이 된 소녀를 미소 짓게 합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서 때로는 살아간다는 일의 고단함으로 지치더라도 소녀는 그 어린 시절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감꽃을 줍고 싶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맑디맑은 한 잔의 녹차는 그 향의 은은함이 감꽃을 닮았습니다. 아침 든든히 먹여서 식구들을 출근시키고 남향의 거실에서 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살을 등지고 앉아 좋은 책을 읽을 때의 행복감이 어릴 때 줍던 감꽃 향을 닮았습니다.
그 책 속에서 더러는 감꽃처럼 소중한 사람살이의 지혜를 주울 때가 있으니까요.
책 속에서 주운 반짝이는 삶의 지혜들을 무명실에 꿰어 내 마음 밭에 걸어두고 우리 삶의 갈피마다 숨어 있는 감꽃처럼 작고 소박한 행복의 편린들을 찾아서 예쁜 꽃목걸이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