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 의해 마음이 덥혀진다는 것

by 은해


누군가에 의해 마음이 덥혀질 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바로 그런 순간을 위해서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마음이 만나서 따뜻함을 나누는 그런 경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게 합니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도 바로 그 따스함으로부터 나옵니다. 오늘 하루도 결코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로 지치더라도 이제 곧 누리게 될 그 따스함을 위해서 우리는 참고 기다립니다. 살아간다는 일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서 내 마음이 따스하게 덥혀지던 그 기억으로부터 나옵니다. 내 마음속에 내가 기억하고 있고,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그 따스함이 있기에 우리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마음이 덥혀진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기억입니다.


어린 시절, 여름밤 모기장 안에서 잠이 들 때 내가 잠드는 그 순간까지 내 등을 긁어주며 부채질을 해주던 할머니의 손길은 지금도 내 마음을 데워 주어 내 삶의 온기가 됩니다. 늙은 호박을 자르고 나면 나오는 그 손톱만 한 호박씨를 말려두었다가 하나 둘 까서 모은 것을 한꺼번에 내 입에 털어 넣어 주던 증조할머니의 사랑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네에 잔치라도 있는 날이면 그 잔치 음식을 드시지 않고 조그만 손수건에 요것조것 모아 싸가지고 와서는 먹어보라고 내 앞에 펼쳐놓으시던 그 마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가 끝나면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의 등에 업혀 그 날 있었던 일을 조잘대며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은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비 오던 날 우산을 가지고 학교 앞에서 기다려주던 어머니가 있어서 이렇게 어른이 될 수 있었나 봅니다. 초경을 시작하던 무렵 생리통으로 배가 아파서 잠 못 이룰 때 늦도록 내 곁에서 배를 문질러 주시던 어머니의 정성이 나를 키웠습니다.


반공일 날이면 할머니 댁에 가느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시간에 그 당시엔 제법 귀했던 카스텔라를 사서 밑바닥에 붙어 있던 갈색 종이를 벗겨내고 먹으라고 건네주던 아버지의 손길이 내 가슴을 따스하게 해 줍니다. 객지에서 공부하고 있던 딸에게 시루떡을 우체국 소포로 보내주었던 기억은 오래오래 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중매 말이 들어오자 그때부터 딸을 어떤 놈에게 주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내 딸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일을 시키거나 만지지는 말고 그저 ‘이쁘다, 이쁘다’하며 보기만 하겠다는 놈 있으면 시집보내겠다고 결심하던 아버지의 그 사랑이 지금까지도 내 가슴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결혼 초에는 부모형제 떠나온 설움에 혼자 눈물짓고 있을 때 말없이 업어주던 그 사람의 따스함은 내 마음을 덥혀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새 생명을 뱃속에 품고 있을 때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끈끈한 유대감은 엄마가 되는 내 마음을 뜨듯하게 덥혀주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는 내 손으로 밥을 떠먹여 주는데 엄마도 먹으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입에 밥을 떠 넣어주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내 마음을 덥혀주었던 수많은 따스한 기억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그 온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중한 기억들은 더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내가 만나는 그 누군가의 마음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겠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아궁이에 군불을 때서 나의 잠자리를 뜨듯하게 데워주었던 것처럼 나도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 그 누군가의 마음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싶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지도록.


내 아이가 더 자라서 어른이 되어 살아갈 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그 마음속의 온기가 되어 남을 수 있는 소중한 기억들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내 짝꿍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겹고 고단한 순간을 만나더라도 내가 나누어준 그 따스함을 기억하고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며 된장찌개에 감자전을 부쳐서 정성이 들어간 저녁상을 준비합니다. 이제 곧 할머니가 되면 손자 손녀들의 재잘거림에 화답하며 눈을 맞추어 주겠습니다. 그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등을 슬슬 긁어 주며 옛날이야기를 해주겠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마음을 덥혀 주는 그 온기가 되고 싶습니다. 내 마음속 온기를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이제는 그 온기가 내 집 울타리를 넘어 다른 이웃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산책길에 만나는 이웃에게도 따뜻한 미소에 마음을 담아 건네는 그런 일상을 꿈꾸어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줄 수 있는 그런 따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누군가의 마음을 덥혀줄 때도 우리는 참 행복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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