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구호 프로그램의 일부로 어린이의 무게를 재고 있다.>
브라질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작품 제목이다. 일정 배급량을 조절하기 위해 아이들의 무게를 단다고 한다. 머리만 크고 팔다리는 앙상하게 말라버린 한 아이가 몇 개의 끈에 걸린 채 도르래처럼 생긴 저울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무언가 당혹스럽다는 감정이었다. 돼지도 소도 아닌 사람의 무게를 저런 모습으로 달고 있다니 그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왠지 편치 않은 것이다.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사진을 찍었을까.
그 사진을 몇 날 며칠을 두고 들여다보다가 나는 이 사진을 찍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나지막한 그러나 매우 절박한 목소리를 들었다.
‘한 인간의 무게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한 인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몸무게를 잰다. 보통은 병원에서 출산을 하게 되니까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기의 무게를 재서 산모수첩에다 적어준다. 대게는 3킬로그램 내외면 정상 몸무게라고 안심하게 된다.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기준치에 턱없이 부족한 경우 미숙아라고 해서 일정기간 인큐베이터 안에서 돌보면서 더 자라기를 기다린다. 그 후에도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몸무게를 재어보는 데 자기의 키와 비례해서 표준 몸무게가 정해져 있어서 저체중도, 과체중도 다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서 다이어트에 들어가거나 저체중인 경우 무슨 병이 있지나 않은지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살면서 알맞은 몸무게를 유지한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로서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다.
이 사진은 인간의 몸무게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세바스티앙 살가도가 우리 인간의 실제 몸무게를 재는데 대한 관심으로 이 사진을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사진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한 인간이 가지는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각 사람이 가지는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각 사람이 가지는 무게는 다 같을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역할이나 그 역할의 중요도에 따라 각 사람이 가지는 무게가 서로 다를 것인가.
만약 사람마다 가지는 그 무게다 다르다면 사람에 따라서 그 무게의 차이가 어느 정도나 날 수 있는 것인가?
남자와 여자가 가지는 무게, 어른과 어린아이가 가지는 무게, 북미 대륙에 살고 있는 어느 지성인이 가지는 무게, 아프리카 대륙의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배가 고파 울고 있는 소년의 무게, 왕의 무게, 왕궁을 지키는 수비대원의 무게, 사죄경을 읊으며 죄를 사해주고 있는 어느 사제의 무게, 고해실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한 죄인의 무게, 그 각 사람이 가지는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또 그 무게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며 누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일까. 그 무게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인가도 생각해볼 문제다.
인간의 무게는 그 어떤 저울로도 잴 수 없을 것이다.
저울이 나타낼 수 있는 최고치의 눈금으로도 인간의 무게는 잴 수 없어서 아마도 저울 앞에 ‘측정불가’라는 표시가 뜨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각 사람의 무게는 이 우주보다도 더 무거워서 그 어떤 저울로도 그 누구도 잴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무게란 각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가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무게는 우리들 인간의 마음으로만 잴 수 있는 것이다. 그 인간의 무게를 마음으로 잴 수 있는 사람이라야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도 소중한 나와 꼭 나만큼 소중한 당신이 만나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몇 날 며칠을 <식량 구호 프로그램의 일부로 어린이의 무게를 재고 있다.>는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잔잔한 음성을 들었다.
인간의 무게란 무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서 함부로 그 무게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무게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고 마음먹으며 나의 무게를 재보려고 체중계에 올라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