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에 대하여

알맞은 규칙을 만들고 지켜야

by 은해


어느 날 아침 서울 도심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의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걸어가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슬쩍슬쩍 쳐다보기도 하였지만 실은 일부러 쳐다보지 않아도 이런저런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이고, 걸으면서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없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렇게 거리와 사람을 구경하면서 걸어가는데 난데없는 시비의 현장을 마주치게 되었다.

택시 하나를 두고 서로 자기가 타고 갈 거라고 싸움이 난 것이다.

그 두 사람은 애초에 길가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둘 중 좀 더 나이가 든 중년의 여자도 길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지점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젊은 여자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택시 한 대가 오자 젊은 여자가 잡아서 날름 택시 뒷자리에 올라탔다. 그러자 곧이어 약간 앞 쪽으로 떨어진 지점에 서있던 중년 부인은 내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화난 얼굴로 택시의 앞자리에 올라탔다.

아마 그 중년 여자가 먼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후에 나타난 젊은 여자가 먼저 택시를 발견하고는 세워서 타버린 것 같았다. 결국 목적지가 달랐을 두 사람이 한 택시에 올라타서 서로 내가 타고 갈 것이라고 다투고 있을 택시 안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힐끗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갔지만 나는 그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싶어 졌다. 분명히 밝혀 두지만 내가 싸움구경이나 즐기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다만 작가란 본래 어떤 사안에 대해서 곰곰이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나는 좀 더 천천히 걸으면서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는 척하면서 그 택시 승차에 관한 시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벌어질 광경을 상상하면서 기다렸다. 그 중년의 여자는 분명 내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고 당신이 나중에 왔으니 택시가 왔으면 내가 먼저 타고 가야 하는 것이 옳다고 항변하고 있을 것이다. 그 지점은 물론 정해진 택시 승강장은 아니었고 그냥 길가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부인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더운 날씨에 한참을 길에 서서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고 서 있기가 힘들었는데 엉뚱한 사람이 택시를 가로챈 것이 화가 났을 것이다.

먼저 택시에 올라탄 그 젊은 여자는 여기가 택시 승강장도 아닌데 아무나 급한 사람이 먼저 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중년 부인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느 때는 우리가 길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나를 픽업해 주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 젊은 여자는 택시를 먼저 발견하고 세워서 탄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택시의 기사는 또 얼마나 곤란할 것인가. 택시 한 대를 두고 두 여자가 서로 자기가 먼저 타고 가야 한다고 다른 한 사람을 내리라고 하는 판이니 중간에서 어지간히 난처했을 것이다. 택시기사 입장에서는 내 택시에 먼저 올라 탄 사람을 태우는 것이 맞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시비를 하고 있는 두 여자 중 어느 한 사람을 내리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주변에서 지켜보는데 잠시 후 뒷자리에 탔던 젊은 여자가 씩씩거리면서 택시에서 내렸다. 중년 여자의 승리다.

택시는 먼저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그 중년 여자를 태우고 출발했고 젊은 여자는 아침부터 별꼴을 다 보겠다고 투덜거리면서 다른 택시를 찾는 듯했다.


나도 더 이상 싸움 구경하는 것이 미안해져서 그 자리를 지나 내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래, 거기가 비록 공식적인 택시 승강장은 아니라고 하지만 택시를 먼저 기다린 사람이 먼저 타고 가는 것이 옳은 일이며 사회정의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큰 잘못도 없이 아침부터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으면서 탔던 택시에서 도로 내린 그 젊은 여자는 과연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젊은 여자도 화가 나 있었다. 혹 택시에서 도로 내리게 된 그 젊은 여자는 얼마간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순서를 지킨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다.

공중화장실에서도 언젠가부터 한 줄 서기가 생겨나서 제법 잘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화장실 각 문 앞에 서서 기다릴 때는 어떤 경우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줄 잘 서서 나보다 먼저 들어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이나, 취업, 각종 선거, 부동산 문제까지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경우에서도 어떤 원칙이나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 억울한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에 승복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우리들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이다.


어느 아침 길을 걷다가 우리가 함께 그리고 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고민해보았다. 이 지구 위에서,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에서, 서울에서 그리고 크고 작은 여러 공동체 안에서 평화롭게 그리고 정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알맞은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 그 규칙이 잘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아주 쉬워보이는 그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 사회 구성원들이 억울해 하지 않고 모두 승복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는 일도 쉽지는 않고 만들어진 그 규칙을 잘 지키는 것 또한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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