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많은 가정에서 애완동물들을 기르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많은 동물이 사람의 가슴에 안기거나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가끔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한 가족 속 굶어가는 모습 속에서도 애완견의 모습을 바라볼 때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애완견들을 키우는 비용이 만만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인식이 고착화될 경우 인간과 분리하는 감정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님은 당연한데 우리는 동물을 인간화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애착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행위가 한 사회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물론 사회의 순기능도 있지만 젊은 층에서 또 다른 가족의 구성원이 생겨나는 측면에서 부정적 요소가 많이 보인다. 유행이란 내가 능력이 되건 안되건 나도 해보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 흐름의 끝에는 잊힘과 이별 그리고 무책임감이 남아있게 된다.
물론 애완동물들의 참기능으로 좋은 경우도 있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공동체생활에서 누군가에게 공격을 하거나 존재만으로 공포감을 갖는 누군가에겐 하나의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괜찮고 내 시선에 귀엽고 사랑스러움을 타인에게도 그러할 것이라는 이기적인 판단력이 우리 사회에 난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애완견들이 길을 가다 부딪히게 되면 피하거나 인도를 내려와 찻길로 돌아 걸어간 적도 많다. 달려드는 경우엔 속수무책으로 도망가거나 공포감에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 속에서 누구를 위한 생활환경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누구나 다른 다양성을 존중하며 우리는 개인의 성향은 무시되곤 한다. 그 바탕에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완견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에서도, 애완견을 보살피는 모습에서도, 난 다른 시선들이 오버랩이 된다. 왜 타인에겐 그 애정을 베풀지 못할까? 왜 물질적 해결에도 손을 벌리고 있음에도 고급사료나 의류 등 소비비용 지출에 허용적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마트마다 코너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 결과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그에 따른 역기능으로 가족 간, 사회 간 교류가 점점 줄어들고 단절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 외로움을 애완동물과의 교감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 결과 그들과의 사이에는 사람과의 관계 이상의 감정으로 소중하게 자리하게 된다.
점점 고립되고 분리된 삶 속에서 소통의 대상이 바뀌고 있다. 이 또한 사회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물론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