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모습이 점점 탁해지고 있다. 아름다운 지구본보다 삶에 찌든 지구의 모습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작은 도시도 퀴퀴한 공기로 가득 차 버린 지 오래다. 어릴 때 보았던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든 날이 많아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섬 제주의 산호초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동네에는 엄청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아파트마다 외관을 해치는 실외기로 무게를 지탱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거리에는 나무들도 힘겹게 버티고 서 있다. 도로 위에는 자동차들로 꽉꽉 막히고 있다.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일이 사뭇 줄어들고 있는 이유이다.
바쁜 일상 속 우리는 어딘가로 오고 가며 지구라는 공간 속에 더불어 살아가기보다 갇혀 지내게 되는 꼴이 되고 있다. 함께 공존하면서도 숨을 쉬기 힘든 곳으로 점점 변질되고 있다.
지친 몸을 뉘이고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뿌연 안갯속에서 헤매는 날이 많다. 살다 보니 습관이 되어 익숙해진다. 숨을 쉬기 힘들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비가 오면 비를 차단한다. 예전 빗속을 거니는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길을 걷다 잠시 공원 벤치 위를 앉고 싶어도 안심하지 못한다. 오염된 환경 속에 둘러싸여 있다는 방증이다.
자연적인 환경보다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생활하게 되는 요인이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삶의 반경이 넓어지면서 그에 동반되는 환경을 파괴하는 요소는 증가추세이다. 그래서 친환경이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다. 바다의 생태계도 파괴되고 있다. 그들도 온갖 쓰레기들로 죽어가고 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한 생활 습관으로 주변 환경을 너머 지구 전체가 뜨거워지고 타버리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편리함 뒤에는 그에 따르는 반대급부가 존재한다. 우리는 편함을 추구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이란 무엇일까? 인간을 위한 환경이란 결국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때 공존이라는 개념이 통용화되어 같이의 의미가 살아 움직이게 된다.
한 예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인간의 편리성으로 개발된 비닐봉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참 실용적이고 편리하다. 하지만 불편함을 해결한다는 명목하에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었다. 동시에 많은 생물들이 멸종위기로 치닫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100년을 산다는 바다거북이 죽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의 숨통을 비닐과 같은 플라스틱이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처참한 최후의 모습이 결국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환경이라는 것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내고 있는 작은 생물들의 치열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도 그 환경의 일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구는 힘겹게 돌고 돌며 수많은 생명들을 짊어지고 있다. 그 안쓰러움을 그냥 지나치지 말기를 바라본다. 다양한 환경 속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