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디지털 세상, 아날로그 감성으로 머물다

-디지털시대와 아날로그 시대

by Sapiens

<am.5:50>



디지털 세상, 아날로그 감성으로 머물다



기억의 사선을 따라 걸어가 본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유행에 민감했던 나는 메모지 위에 나만의 감성적인 발라드 노래 제목들을 빼곡하게 적어 놓았다. 그리고 레코드 판매점에서 빈 테이프를 하나 구입했다. 두 가지를 챙기고 한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 시절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아 녹음해서 음악을 듣던 것이 유행이었다. 지금은 컴퓨터에서 버튼하나로 클릭하고 저장해 플레이하면 언제든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음악테이프를 집어넣고 카세트테이프 속에 저장한 음악 한 곡 한 곡을 감상하던 시절이었다. 나만의 음악을 지니고 다니던 시절, 우리는 꽤나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요즘을 너무나 많은 변화 속 달라진 풍경들이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빠르고 쉽게 접하는 것들 속에서 우린 길들여지다 보니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느린 테이프처럼 옛것들이 지루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느림의 미학은 존재하는 것 같다. 유행은 돌고 돌아 우리와 호흡하듯 다시 옛 물건들이 비싸게 거래되고 구입되어 전시되기도 한다.


그 시절 나는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려놓고 깨끗하게 닦아낸 다음 뾰족한 바늘을 떨리는 손길로 올려놓곤 했었다. 그 행위가 이제는 멋스러운 자태처럼 다가온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디지털화되어 가도 감성은 시대를 오르내리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간다. 새로움은 낯설지만 빨리 수용되어 우리의 삶 속에 잠식된다. 하지만 익숙함은 당연한 감정 속에 매몰되어 그 가치를 잊게 되고 쉽게 잊히곤 한다.


무엇을 좇을 것인가? 그것은 우리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유행에 둔감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취향의 문제이고 순간을 기억하는 향기와 같은 것이다.


문화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반영한다. 그러면서 변화되고 성장한다. 디지털화되는 시대 속에 아날로그가 살아 숨 쉬는 이유이다. 액체 커피를 커피메이커에 넣어 내려서 마시거나 커피콩을 직접 손으로 돌리며 갈아 천천히 뜨거운 물을 부으면서 내려 마시는 커피를 즐기기도 한다. 카페에 가서는 주문을 하기 위해 키오스키에서 버튼 하나로 주문을 한다. 그 행위 속에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의 부재를 가져온다. 물론 편리함과 스피드에 있어서는 의미가 있다.


변화되는 시대에 앉아서 아날로그 생활을 즐기는 풍경이 낭만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제는 융합의 시대이다. 어느 한 가지가 아닌 공존하며 자신의 취향대로 선택하며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패드를 열어놓고 컴퓨터로 음악을 틀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감성은 과거를 회상하며 그 시절 낭만이 남긴 향기를 맡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운과 미련이라는 꽃봉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