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는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다. 주워 담아 제자리에 두어야 하는데 하루가 지날수록 쌓여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 하나하나의 본모습이 사라진다. 먼지가 쌓이고 녹이 슬고 변색되어 간다. 그러다 보니 처음 사용했을 때의 기능이 묵혀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게 된다. 결국 쓸모가 없어져 서슴없이 버려진다.
우리들도 자기만의 향이 사라지며 쓸모없는 신세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어떤 집단에서 자신의 쓰임이 명확하지 않거나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때 불안함이 엄습하기도 한다. 존재함을 과시하거나 자신을 부각하기 위해 자신의 쓸모의 역량에서 벗어난 쓰임으로 자처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모한 행위는 결국 자신의 파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있다.
누구나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자신의 쓰임을 잘 알고 적재적소에 행동하며 쓸모 있는 존재로 기억되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진실이 사라지고 타인의 시선에 잊히거나 지워지는 자신의 쓰임을 마주하곤 한다.
타인과의 공존은 어떤 면에서 피곤함을 양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자신의 소임에 따라 쓸모 있는 존재로 드러내고자 한다. 사실 쓰임이 다른 것들이 공존한다는 것은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의 방증일 것이다. 쓰임이 다르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타협을 할 때에도 뛰어난 전략가가 필요하듯 쓸모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쓰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들이 없다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쓸모가 있다. 그 쓸모의 이유를 알아가는 것이 우리 자신이 알아야 하는 점이다.
부모가 되어 양육의 시기를 보낼 때를 회상해 본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쓸모 있는 존재였을까? 어떤 모습의 쓰임으로 존재했을까? 다시 생각의 문을 열고 되돌아본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든 쓰임을 다하며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부단한 자신의 소임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다. 매 순간 흐트러져 널브러진 채 시간을 쌓아두기만 한다면 언젠가 무너지는 시간의 탑 속에 매몰된 채로 서서히 소멸되어 갈 것이다.
어떻게 쓸모를 다할 것인가? 쓰임이 다하는 순간과 마주할 때까지 우리가 최선을 다하며 고민해야 하는 화두이다. 그 앞에서 너무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길 바란다. 오히려 뒤섞임 속에 자신의 쓰임이 빛이 나길 바라본다. 공존 속 외로움에 허우적거리지 말고 당당하게 자기만의 쓰임 속에서 쓸모 있는 존재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