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입춘이 지나가고 있다.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고 떨어져 지낸 지, 한 계절이 지나고 있었다. 잠시 남편이 지내고 있는 숙소에 와 있다.
휴일 아침, 집안에만 있기가 답답해 남편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밖은 봄날의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걸어갈까?’ 말하고 했다. 목적지는 집 근처 농협, 그곳에서 몇 가지 먹거리를 사고 올 요량이었다.
등줄기를 감싸 내리는 햇살 덕분에 걸어가는 길에 몸을 움츠리지 않아도 되었다. ‘봄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심히 계절은 또 다른 계절로 바뀌고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도 어린싹을 품고 조금씩 움트고 있다. 다가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싹들이 인사라도 하듯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선은 멈추지 않고 발걸음을 쫓아가고 있었다.
아직 누르스름한 줄기가 예뻐 보이지 않아서일까? 죽어가듯 말라비틀어진 나무줄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마치 초췌하고 가느다란 나무줄기 무리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리 속에서도 봄은 숨 쉬며 자라고 있었다.
농협에 도착한 우리는 생필품 몇 가지를 샀다. 마트에서 나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사기 위해 집 근처 하천을 따라 걸었다. 집 근처에 좋은 산책길이 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좋다!’ 집 안에만 있었으면 몰랐을 이 기분, 찌뿌둥하던 몸에 산소가 채워지고 나가며 환기되고 나니, 몸이 가벼워지고 상쾌하다는 감정이 찾아들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카페 문 앞까지 도착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카페 안이 답답해 보일 정도로 봄날 햇살은 계속 내리쬐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주문하고 아메리카노를 손에 쥔 채 밖으로 나왔다. 다시 걸었던 길을 돌아 걸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느덧 우리는 ‘자녀들의 양육’에서 독립하였고 각자 자기의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십 줄기의 마디를 조금은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삶의 마디마다 찾아오는 출렁이는 칠정(七情:희, 노, 애, 락, 애, 오, 욕)의 감정들이 이제는 조금은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이 이래서 좋은 걸까? 오십은 마흔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지만,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살다 보니 흔들리는 파도를 거스르기보다 함께 올라탈 수 있게 되었다. 그 파도 위를 남편과 함께하고 있었다.
남편과의 산책은 의미 있는 인생길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봄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다시 움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