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piens Mar 11. 2024

인싸의 삶, 아싸의 삶

-아웃사이더의 삶을 지향한다




언제부터인가 아웃사이더의 삶이 좋았다. 아웃사이더의 삶을 자처하는 이유는 나의 성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관계라는 그물망 속에서 얽히고설키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속에서 잘 융화되는가 하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자의적으로 섞이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그러한 경계에서 수없이 타협하기도 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의 본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인간의 탐진치(욕심, 노여움, 어리석음 감정 작용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천성적으로 측은지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항상 누군가를 관찰하는 시선 속에 머물며 생각이라는 관념 속에서 유영하곤 했다. 누군가 나의 생각을 물어도 잘 내뱉지 않았다. 그러다 용기 내어 말을 걸 때면 가족이든, 친구든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내 말이 옳았지만, 그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붉은 것을 붉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타인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아웃사이더의  위에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대충 타협하며 승자들의 입장에 서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약자의 편에서 대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공동체든 그 에서는 편 가르기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의를 못 참고 드러내는 성향임을 알기에 항상 바운더리에서 모난 관찰자의 시선으로 존재했다. 그러다가도 필요한 경우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곤 했다.


어른이 될수록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리석고 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다. 누군가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고, 그 속에서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부딪히고, 때론 타협하면서 우리가 탐, 진, 치, 즉, 탐욕과 어리석음,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진정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 속에 존재할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평온한 감정 속에 자신을 둘 수 있다는 이치를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웃사이더의 삶이 좋다. 오히려 당당하게 그러한 삶을 지향한다. 남들을 옥죄는 상황에서 벗어나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 놓일 때 펼쳐지는 상황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면을 볼 수 있는 생각의 회로를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설날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