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결혼과 육아를 선택하는 순간, 자신의 이름은 잊힌 채 살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육아의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절은 가장 왕성한 시기의 에너지를 빼앗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모습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게 했다. 그래서 자신을 잠시 벗어놓고 엄마라는, 며느리라는, 누군가의 아내라는 이름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시기이다.
나는 오십이라는 나이를 지나며 중년의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양육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원래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제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세상과 소통하는 공간 속에 머물렀다. 매년 참가하는 북페어에서 셀러로 참여하였다. 글을 쓰고 독자를 만나는 일은 가슴 떨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게 해 준다.
글을 쓰고 독자를 만나고, 강의하면서 나는 이전과 결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니다. 그동안의 시간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내 자아의 또 다른 형상을 통해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과거 속 걸어온 시간이 현재의 나를 만들고 있듯, 지금의 모습이 축적되어 미래의 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매 순간 깨어있으려고 한다. 웬만하면 어떤 일이든 정성껏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즐긴다. 그 모습 속에 또 다른 부캐가 생겨나며 나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변화한다. 성향도, 가치관도, 살아가는 의미 또한 성장하고 소멸하며 재탄생의 시기를 경험한다. 그 경험으로 아프기도, 시리기도, 기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지니고 카멜레온처럼 적재적소에 옷을 갈아입으며 지독한 삶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상처가 아픔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아물며 딱지가 생기듯이 자신은 점점 강해지고 결국에는 흔적을 남기며 희미해진다. 하지만 통증의 사라짐, 흔적의 희미함은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동력이 되는 그 사람의 에너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자기만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발휘하며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도 한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즐긴다. 책을 출간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때론 도서관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강연도 한다. 그리고 어제처럼 직접 북페어와 같은 행사에 셀러로서 참여하기도 한다. 이제는 엄마보다는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이며 살아가고 있다. 양육이라는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고 현재의 나를 표현해 주고 있다. 타인들의 눈에 비치는 나는 Sapiens라는 닉네임을 가진 강사이자. 작가, 그리고 고영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존재한다.
‘본래’라는 것은 없다. 이제 알게 되었다.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겁의 시간을 거치며 우리는 무너지고, 부서지며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었을 때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다른 존재로 다양한 색을 입히고 있다. 그런 자신을 사랑하고 주어진 시간을 응원하며 감사히 여긴다. 나의 모든 변화를 사랑한다. Sapi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