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손끝으로 스쳐가는 풀꽃들의 풋풋한 바람과는 다른 바람을 마주할 수 있다.
그 바람이 거칠든 부드럽든 나를 관통한다고 한들 아무런 흔들림 없이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살다 보니, 살아가다 보니 이제 예전의 나가 아님을 느낀다.
만약에 거칠고 휘몰아치는 태풍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태풍의 눈 안에 갇혀 본 적이 있는가? 신기하게도 혼란 속 주위의 환경과는 다르게 고요함이 존재했다. 삶의 태풍을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태풍 주위에서 서성거릴 때는 휘몰아치는 무리들 속에 존재했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었으나 우연히, 아주 우연히 태풍 속 고요한 공간이 있음을 깨닫고 난 후부터는 태풍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해 오리 같은 바람을 헤치며 들어가다 보면 안전지대처럼 평온함이 찾아온다. 신기했다. 삶이란 경험들은 부딪히다 보면 그렇게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 주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돌아보면 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있는 것이었다. 배움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세상엔 공짜란 전혀 없음을 느낀다. 당연하다. 그래야 헛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때문이니까,
나의 육체를 통해 세상에 온 아이들이 이제 각자의 삶을 위해 둥지를 떠나려고 하고 있다. 참으로 부족한 부모 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음에 미련은 없다. 아무리 잘해줘도 만족이란 없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부터 나를 떠나가야 할 운명을 갖고 온 생명들임을 알기 때문에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나의 모든 것을 준 것 같다.
그들에게 줄 경제적 도움은 없지만 그들에게 전해 줄 나만의 노트가 열 권정도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마다 찾아 읽었던 책들, 그 속에서 찾은 보물들을 난 20년 동안 그 속에 빽빽하게 적어 두었다. 훗날 그 아이들이 나처럼 힘들거나 막막할 때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하나하나 적다 보니 여러 권이 된 것 같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든 안되든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고 내가 선택한 양육방식이었으니, 그들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신이 나라는 작은 생명에게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게 해 준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아이들을 키우며 난 사랑을 배우고 감사함을 배우게 되었으니까, 눈물도 흘릴 수 있었고, 행복도 배우고, 사람이란 무엇으로 사는 것인지를 배울 수 있었던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었으니까,
sapiens..., 너는 참 열심히 살아냈구나, 수많은 아픔 속에서 아름다운 두 청년의 꽃을 피워냈으니..., 참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너의 오롯한 너 자신의 삶을 향해 또 다른 항해를 하길 바랄게. 너 자신만의 항해에도 먹구름과 큰 파도들이 수도 없이 오르내리겠지, 하지만 너도 알잖아... 결국 너를 성장시켜주는 상처가 되어줄 것이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상처는 아픔이 아닌 아름다운 네 삶의 흔적이 될 것을 말이야.